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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그림에 깃들다!' (새가정 2015년 1월호) 주민교회 (juminch)
2016년 11월 21일 22시 32분 24초 556




 


 


 




 


 


 



 

그리스도 이콘, 84.5*44.3cm, 목판, 시나이 반도 성 카타리나 수도원, 6~7세기 경

그림 출처 : 홍진경, 베로니카의 수건, 예경, 2001년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 8:12)


머리 둘레에 금빛 후광(Aura)을 두른 그리스도께서 한 손에는 보석과 금판으로 장식된 두꺼운 성경책을 들고 또 한손으로는 보는 이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축복하신다. 전체적으로 근엄하고 잘 정돈된 느낌의 이콘(Icon)으로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그리스도 얼굴은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우리가 볼 때 왼쪽 얼굴의 주님은 굉장히 인자한 눈을 지니고 우리를 환영하는 따뜻한 사랑과 용서의 그리스도이다. 반면에 오른쪽 주님의 모습은 눈이 냉엄하고 눈썹 굴곡이 심하여 각지고 얼굴의 그림자 부분이 넓어서 광대뼈가 더 두드러져 보이며, 입술은 약간 밑으로 쳐져서 차갑고도 냉소적인 느낌을 준다. 1500년 전 어느 신앙인이 사랑과 용서의 이미지와 함께 무서운 심판자의 모습을 한 얼굴 속에 담아놓은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궁극적 용서와 절대적 심판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계신 분이다. 하나님은 무한한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지만 충분한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은총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두려운 심판을 단행하시는 분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갖추고 계신 분이다. 주님은 단지 인간만도 아니고, 온전히 신만도 아니라 신과 인간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계시기에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예수님을 신으로서만 바라보았다. 늘 근엄하고 두렵고 완벽한 그리스도, 우리 같은 죄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비의 그리스도, 우리와는 존재론적으로 같지 않은 분임을 강조해온 것이 기독교 역사다. 우주적인 신으로서의 그리스도 입장에서 지금 나의 슬픔과 고통을 보면 너무 작고 사소한 일이라 별로 관심을 기울일 것 같지 않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주님은 좀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

 

2~3백 년 전부터 기독교 신학은 오랫동안 신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던 분위기에 대한 반동으로서 인간 예수를 강조하였다. 이것은 고고학과 문헌학의 발달로 가능해졌다. 갈릴리 시골에서 하층민들과 함께 격의 없이 어울리고 같이 울고 웃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친구가 되어주는 따뜻한 인간성을 지닌 분, 소위 갈릴리 예수의 모습을 상당히 복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신선한 예수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처럼 인간 예수의 이미지에 경도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즉 예수는 위대한 분이요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할 인류의 한 스승이시다.

 

2천 년 기독교 역사를 지닌 서구의 교회들이 점점 비어가고 겨우 관광지나 음악회 장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서구의 교회가 확연하게 스러져가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계몽주의 이래 예수는 우리와는 다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마음 곱고 넉넉하며 덕스러우면서도 불의에 저항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위인으로 보는 경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수 상에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신으로서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보아 그의 신성을 약화시키는 자세로는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이것이 현대 소위 진보적 신앙인들의 불행이다. 예수님은 분명 두 얼굴을 지니고 계셨다, 온전한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셨다. 우리는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바로 이 고백을 지키기 위해 피 비린내 나는 핍박을 말없이 받은 것이다.

 

인성과 신성, 구원과 심판의 두 얼굴을 지닌 그리스도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다. 악이 선의 결핍이듯이 어둠은 빛의 결여다. 세상이 어두운 것은 빛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용서와 사랑을 통한 구원이 약화되고 불의가 확산되어 심판의 어둠이 가까워지는 것은 빛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이 영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고 소리쳐야 할 우리가 본연의 사명을 외면하고 세상에 묻혀버리거나 빛이신 그리스도를 너무 축약시켜버린 결과다.
 
 
이훈삼목사<성남주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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