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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함 속에 깃든 기쁨과 미래 <새가정 2015. 09월호> 주민교회 (juminch)
2016년 11월 21일 22시 37분 42초 560
고단함 속에 깃든 기쁨과 미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편 128:1~2)
 



피터 브뤼겔, 보리 추수, 1565년, 118*163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림 출처 : 고종희, 일러스트레이션 미술 탐사, 2002년, 생각의 나무


구름 없는 한 낮, 바람조차 미동도 하지 않는 여름 들판에서 보리 추수가 한창이다. 추수하는 언덕에서 바라본 먼 바닷가에는 한가로이 배들이 떠 있다. 여기 저기 들판마다 황금빛으로 변하고 누렇게 익은 보리들은 추수할 낫을 기다리고 있다. 보리밭 중간에 서 있는 나무 가지 사이로 동네 언덕 위 교회의 종탑이 보인다. 이제 저녁이 되어 거기서 종이 울리면 땀과 먼지로 범벅된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추수는 이미 한창 진행 중이다. 햇빛을 가리고자 모자 쓴 남자들이 긴 낫을 휘두르면 보리는 그 자리에서 넘어진다. 저 긴 낫은 브뤼겔의 다른 그림들에서는 공포의 ‘죽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머리를 흰 보자기로 가린 여성들은 부지런히 쓰러진 보릿단을 묶어서 세워놓는다.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느라 고개를 들 시간도 없다. 모든 것을 사람 손에 의해 시작하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 시절의 추수란 이처럼 고된 노동이다. 가운데 나무 아래에서 한 남자는 배부른 식사를 마치고는 오른 팔로 머리를 이고 입을 벌린 채 곯아 떨어졌다. 노동의 무게만큼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노동의 효율성을 위해 대개 일은 두 패로 나눠서 진행되었나보다. 한창 일을 하는 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밥인지 새참인지 열심히 먹고 있다. 빵을 손에 들고 먹는 남자와 여자, 우유에 시리얼 같은 것을 말아서 먹는 이들, 그리고 칼로 치즈 같은 것을 자르는 남자, 이미 식사를 다 마쳤는지 큰 물통을 입에 대고 마시는 남자, 그 남자 오른쪽에서 숟가락을 뜨는 여성은 무척이나 인자한 얼굴이다. 저기 보리밭 길 사이로 몇 여성들이 보릿단을 어깨에 지고 나르고 있고, 그 길 사이로 젊은 남자가 커다란 물통을 양 손에 든 채 걸어오고 있다. 물통 무게가 어깨로부터 느껴지는 것을 보니 우물까지는 꽤 거리가 있나보다. 뙤약볕,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엄청난 넓이의 밭, 모든 것을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노동의 양 등 여러 가지 힘든 요소들이 실재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이 그림에는 평온함이 묻어난다. 황금빛의 힘일까?

피터 브뤼겔(1525년 경~1569년)은 플랑드르(지금의 북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지역)를 대표하는 화가다. 당시까지 그림은 대개 교회나 왕과 귀족들의 후원과 주문에 의해서 그려졌다. 당연히 종교적 인물이나 지체 높은 사람들만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평민이나 농민,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나 자연 풍경은 그림의 주제가 될 수 없었던 시대에 브뤼겔은 과감히 자연과 평민의 일상에 관심을 기울였다. 역사의 주인공을 귀족으로부터 민중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그는 풍속화의 선구자가 되었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앞줄에 섰다. 그는 진정한 민중의 화가로서 자연과 일상의 세세한 부분들을 그림에 담았고 그것은 오랜 시간의 관찰과 연구를 전제로 했다. 이처럼 이성에 의한 관찰과 분석이야말로 오늘까지도 우리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짓고 있는 근대(Modernism)의 핵심 도구다.


 





언덕 아래 마을 가까이에서는 십여 명의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지금부터 500년 전, 놀 거리가 변변치 않았던 시절이지만 아이들은 마냥 신난 것 같다. 우리도 60년대까지 태어난 기성세대는 아련하지만 이러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 신명나게 놀 수 있는 바탕에는 뜨거운 여름날에도 노동하는 이전 세대의 힘겨운 수고가 깔려있다. 그래서 모든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에 일정한 빚을 지고 있다. 또 이전 세대는 다음 세대의 풍요와 행복을 위해 기꺼이 땀 흘리는 것으로 행복해 한다. 노동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 결과는 모두에게 평안과 만족을 주기에 소중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노동과 수고의 결과로서의 풍요와 안식이 당연하지는 않다는데 우리들 삶에 비극성이 내재한다. 정말 선한 뜻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도 그 결과는 허망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 허망함이 자연적인 요인에 따른 것이라면 어쩔 수 없으나 우리가 만든 사회의 구조와 제도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악마적이다. 우리가 현재 사회 구조로서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소수의 독점과 다수의 허망함을 근원적으로 내포하고 있음을 우리는 정밀하게 직시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한 과제는 분명 여기에 닿아있다. 나아가 우리는 노동을 넘어 인생과 역사 자체의 허무를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최선을 다 한다고 자동적으로 결실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인생과 역사는 기계나 수학처럼 그렇게 조리(條理)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한 만큼 수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은총이고 행복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은총을 약속해 주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에게 수고한 만큼 결실하고 형통케 할 것이라는 약속 – 복음이다.

<이훈삼 성남주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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