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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출구는 어디인가?(새가정 2015.1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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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교회 (jumin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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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1일 22시 38분 28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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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정 2015.11월호 : 디에고 리베라 '탄광 출구'
노동자의 출구는 어디인가?
누가 3:9~11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
디에고 리베라, 탄광 출구, 1923년, 프레스코, 멕시코시티
교육부청사 벽화 ‘노동의 장’의 동쪽 부분 출처 : 마이클 곤잘레스 저/정병선 역, 벽을 그린 남자 – 디에고 리베라,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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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혁명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년)는 1920년대부터 남미의 미술을 세계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라틴 아메리카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다. 그는 1908년 22살에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에서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등 당대의 진보적 사상과 미술의 혁명성을 접한 후 1921년 멕시코로 돌아온다. 미술의 공공성에 심취한 리베라는 동료화가들과 함께
벽화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에 집중하게 되고 그 첫 번째 작업으로 멕시코시티의 교육부 건물에 116점의 프레스코 벽화를 제작하였다. 그 중에
18점을 리베라가 그렸다. 이 작품들은 멕시코의 과거와 현재를 파노라마 형식으로 표현한 대작이었다.
![]() 교육부 청사의 ‘노동의 장’ : 1층 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설탕 공장’ ‘탄광 입구, ’탄광 출구‘가 유명하다.
그 중에서 특히 ‘탄광 입구’와 ‘탄광 출구’ 연작이 인상적이다. 거대
자본의 하수인으로서 곡괭이와 삽을 든 탄광 노동자들이 깊고 커다란 입을 어둡게 벌리고 있는 탄광 속으로 줄지어 들어간다. 저들은 하루 종일
컴컴한 지하 굴에서 산더미 같은 석탄을 캐며 몸과 영혼이 새카맣게 타들어갈 것이다. 그리고는 전쟁 같은 하루 일을 마치고 다시 탄광 밖으로 한
사람씩 빠져나온다. 여전히 탄광 안은 어둡고 두렵다. 밝고 희망찬 생활을 위해 어두운 탄광으로 아침에 빨려 들어갔다가 저녁이면 하나씩 뱉어지는
광산 노동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그러나 목숨을 건 수고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감독관의 신체검사다. 혹시라도 몸 어딘가에 보석 원석이라도 숨겨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싸늘한 의심이다. 입을 벌리고 힘들게 사다리를 올라오는 광부, 이제 다 올라와서 고개 숙여 옷을 터는 광부, 이 모든 과정을
먼저 마치고 순순히 검사에 응하고 있는 광부! 검사를 받는 광부의 모자는 발 옆에 아무렇게나 떨어져있다. 마치 그의 인격처럼, 그의
노동처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말이다. 높이 올린 그의 양팔에서는 리베라가 이탈리아 여행 중 크게 감명 받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프레스코화가 겹쳐진다. 하루 종일 탄광 안에서 노동에 지치고, 탄광 밖에서는 의심의 대상이 되는 이 광부는 아무 말이 없다. 묵묵히 손을 들고
검사에 응할 뿐이다, 마치 털 깎는 양처럼! 그의 양손과 가지런히 모은 두발을 이으면 정확하게 역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으며, 그 꼭지 점은
아래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광부의 정수리를 지나 어두컴컴한 노동의 현장으로 낙하한다. 지난 7월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디에고 리베라 전을
보았다. 이 작품 ‘탄광 출구’는 전시장을 나오면서 구입한 관련 도서에 수록된 것이다. 길 건너 폭염이 쏟아지는 광화문 광장에서도 세월호 관련
작품들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시대와 내용과 성격은 다르지만 리베라와 세월호 작품들의 간격은 공공의 아픔이라는 지점에서 좁혀지고 합류하고
있었다.
![]()
그리고 2015년도를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하는 시점임에도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은
죽음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평택에서는 6년 동안 일터와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대표가 새로 출시한 차가 잘
팔리면 해고자 복직을 추진한다던 회사의 약속 이행을 촉구하며 목숨 건 단식을 한 달 이상 중단하지 않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는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넉 달 동안이나 전광판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때, 정부는 임금 피크 제를 통하여 또다시 노동자들의 허리를 졸라매려고
한다. 어느 여성 국회의원의 분노에 찬 음성이 귓가에 맴돈다 : ‘임금 피크 제는 연봉 1억 2천만 원 받는 노동부장관과 1억 4천만 원 받는
국회의원은 뺀 채로 겨우겨우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것이다. 더 이상 졸라맬 허리가 없는 노동자들에게 허리띠를 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너무 비양심적인 것 아닌가!’ 1920년대 멕시코 사회의 탄광 노동자들의 고통과 슬픔은 2015년 한국 사회에서 별로 다르지
않게 재현되고 있다. 마치 그 아픔이 리베라의 벽에 그대로 남아있듯이 그렇다. 성경에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여있으니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라! 그 때와 다른 것은,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훈삼목사<성남주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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