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전에 영국의 포인터 경이 이 장면을 그렸다. 원래는 회벽에 크게 프레스코화로 그리기 위해 시험적으로 먼저 만들어본작품이라고 한다. 바울과 바나바를 옷을 다 벗은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실제로 당시 이들이 옷 벗고 일했다는 것은 아니고, 화가의 취향이다. 최고의 예술작품은 인간의 신체라는 생각, 그 몸의 구체적인 근육‧뼈‧핏줄‧신경 등이 인간의 자세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고 연결되는지를 그림에 반영하는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이후 하나의 유행 같은 것이었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정성껏 심는 나무다. 저 나무는 지금은 작지만 세월이 흐르고 역사의 경륜에 따라 무성한 가지를 지닌 큰 나무로 성장하리라. 그러면 비바람이 불어도 가뭄과 홍수가 닥쳐도 든든히 서서 많은 생명을 품고 쉬게 하는 생명의 나무가 될 것이다. 교회는 그래야 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수고할 뿐이다.
나무를 잘 심기 위해서는 혼자 애쓰기보다는 여럿이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울은 정성껏 땅을 파고 나무를 심는다. 둘 다 땅만 파고 나무를 심기만 하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한 사람이 땅을 파고 나무를 심으면 다른 사람은 물을 길어 와서 충분히 물을 줘야 한다. 반대로 둘 다 나무는 안 심고 주전자 가지고 다니면서 물만 주려고 하면 그것도 도움이 안 된다. 심는 사람도 필요하고 물주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들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화가는 바울과 아볼로가 맡은 역할이 다르고 그래서 있는 위치가 다르지만 이들의 한 호흡을 표현하기 위해 바울과 아볼로의 눈길이 정확하게 대각선으로 만나도록 구성했다. 일은 다르지만 눈길이 마주친다. 하나님의 선교는 여기서 일어나는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