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 전,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아주 현대적인 인물이 있었다. 도마(Thomas)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마침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나중에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가능한 것이냐고 의심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아 실증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25절)
여기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
복음서 중에서도 요한복음만이 기록하고 있는 이 독특한 장면을 400년 전 카라바조가 그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카라바조가 그린 제자들의 행색은 지저분하고 꾀죄죄하다. 머리는 감은 지 며칠은 지났고 이마에는 주름이 잔뜩 져 있다. 도마의 옷 어깻죽지는 해져 벌어졌고, 손가락과 손톱에는 때가 꼬질꼬질 끼어 있다.
제자들은 진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맞는지 온 감각을 동원하여 집중해서 본다. 한 순간도 딴청 피우지 않는다. 진지하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본 다음에야 믿을 수 있다는 자세다. 이것이 근(현)대인의 특성 근대성(Modernity)이다. 사실은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활하신 주님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끔찍하고 잔인한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님의 옆구리 상처에 직접 손을 넣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그림은 없었다!’ 이 그림 보고 있으면 내 옆구리가 괜히 움찔해진다.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만져보고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셨지만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고 아파라 하시는 것 같다.
손을 집어넣은 도마의 손목을 잡고 적극적으로 집어 넣어보라고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손목을 저지하면서 아프니 그만하라고 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집요하게 확인하고자 하는 도마의 집중적인 표정과 하라고는 했지만 곤혹스러운 주님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다 만져본 다음에 주님은 도마와 그 후예인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27,2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