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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후고(1588~1629년), 경건한 기도, 1624년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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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07월 19일 10시 11분 11초

헤르만 후고(1588~1629년), 경건한 기도, 1624년

한 사람이 두 손을 꼭 모으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다. 그의 큰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는 것 같다. 한 쪽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하는 주변의 환경은 황량하기만 하다. 하늘에는 달이나 별도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말라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와 건조한 바위뿐이다. 사람과 놀이가 없는 광야에 홀로 나와서 그는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다.

경건한 기도자를 바짝 둘러싸고 있는 것은 인간의 뼈다. 뼈만 남은 인간 안에서 그는 기도하고 있다. 책상다리로 앉아 있는 이 뼈는 한 손은 땅바닥에 늘어트리고 또 한 손은 턱을 괸 채 바위에 기대어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 삶이란 무엇인지 뼈만 남아서도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슴으로 품고 있는 사람의 기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400년 전, 지금의 벨기에 사람으로 스페인의 예수회 군종신부였던 헤르만 후고는 서양 중세 사람들의 정신을 이 간단한 그림에 담았다. 늘 죽음에 둘러싸인 삶 - ‘생의 한가운데에 우리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미 중세는 막을 내리고 근대가 시작되었지만 사람들의 의식세계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니기에 17세기에도 사람들은 인간이 죽음의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저렇게 아직 젊고 피부가 탄력 있고 살날이 창창한 사람도 늘 죽음의 그물망에 걸려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사람들이 서양 중세 인들이다. 인간은 죽음의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악에 대해서도 한계를 지닌다. 극단적인 악의 자리까지 가기에는 두렵기 때문이다. 중세를 끝장내고 인간의 자유를 극대화시킨 현대인들이 한계를 모르고 악해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우리는 훨씬 연약하고 우리의 인생은 짧으며 우리가 지금 지니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한 줌 흙으로 흩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신의 본질을 체감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