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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자살, 프랑스 오툉 대성당 부조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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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19년 11월 22일 17시 53분 08초

유다의 자살, 프랑스 오툉 대성당 부조


예수님의 구원사에서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인물은 단연 유다이다. 가룟은 이스카리옷 지방 출신을 의미하거나 또는 무장독립운동가(시카리)라는 뜻도 된다. 그래서 정말 왜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했는지 수수께끼다. 진짜로 돈이 탐나서 은 30냥에 팔아먹은 것인지, 아니면 무장 투쟁 독립운동을 원했지만 예수님은 비폭력 평화와 사랑의 노선이었기에 그 점에 실망해서 배신한 것인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함으로써 역사 상 가장 불행한 이름이 되었다. 서양 문화에서 ‘유다 같은 놈’하면 가장 치욕스러운 욕이라고 한다. 유다는 명예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돈도 받아 챙겼지만 그의 생애는 비참하게 종말을 맞이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태 27:5)

프랑스 동쪽 중부의 오툉(Autun)이라는 도시에 있는 성 나자로 대성당(1120~1146년)은 12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오툉 대성당 서쪽 정문에 새겨진 최후의 심판 부조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사실적이어서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것이다.
그 성당 어딘가에 작은 부조로 유다의 자살을 묘사한 작품이 있다고 한다.

이런 작품을 크게 확대해서 자기 사무실이나 침실에 두는 사람들도 있는데 참으로 기묘한 취미다. 저렇게 의자 뒤에 액자를 걸어 놓고 일하면 괜히 목이 근질거릴 것 같은데 말이다.

유다의 자살을 묘사한 그림들은 더욱 잔인하고 끔찍한 모습들도 많다.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유다에 대한 증오와 멸시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나마 이 부조는 재료가 딱딱한 돌이라 세부 묘사하기가 쉽지 않아서 개략적으로만 표현한 것이 다행이다. 그럼에도 드러낼 것은 다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의 종말은 비참했다. 그는 스스로 목을 매어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 부조에서 재미있는 것은 사실 유다의 죽음은 양쪽에서 악마가 그를 목매단 것이라는 해석이다.

흉측하게 생긴 악마 둘이 입을 벌려가면서까지 있는 힘을 다해서 유다를 매달고 있다.

매달린 유다의 왼팔은 축 늘어져 있고, 목이 조여오니 입을 벌리고 혀가 삐져나오고 있다. 그리고 눈도 거의 튀어나올 지경이다. 비참한 최후다. 예수 공동체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 중의 하나로서 주님이 재정을 맡기셨으니 사실은 가장 믿을만하고 지도력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유다가 예수님을 조종하고 윽박지르고 폭력도 행사할 정도로 지나치게 묘사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유다는 예수님과 제자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인물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신뢰를 유다가 등졌다. 이유야 무엇이든 그는 주님을 배신했다. 그 대가(代價)는 12세기 프랑스의 기독교인들이 성당의 돌에 새겨놓았듯이 참혹했다.

성경과 성경을 돌에 새긴 900년 전의 신앙인들은 결코 하나님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진하고 강하게 새겨 놓았다. 이 음성을 듣는 이가 지혜롭다. 배신의 대가(代價)는 2,700년 전북왕국 이스라엘 때나 2000년 전 예수님 때나 900년 전 서양 중세 시대나 21세기 지금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