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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5. 라파엘로, 아테네에서 설교하는 바울 습작, 27.8x41.8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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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0년 07월 04일 16시 03분 03초

<2020.7.5. 주보 그림>
라파엘로, 아테네에서 설교하는 바울 습작, 27.8x41.8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바울이 적(?)의 심장으로 뛰어들었다. 종교는 결국 사상이다. 인생과 역사를 근원적으로 어떻게 보아야하는지를 묻고 답하는 것이 종교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조명에서 나를 성찰하고 가치를 두며 세계를 변혁하는 종교다. 2천 년 전에 시작된 기독교 이전에 역사는 진공상태가 아니었다. 지금보아도 깜짝 놀랄만한 사유의 깊이와 치열한 논구가 이미 비기독교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기독교는 기존의 철벽같은 사상의 경쟁자들을 돌파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복음이 오히려 말라죽고 만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종교가 명멸했는가? 그것은 기존의 사상 체계를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2천 년 전, 유럽과 근동을 지배하던 사상의 본고장 아테네, 결국 바울은 그 활활 타오르는 사상의 전쟁터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원작을 위한 습작이지만 그 자체로 작품이다, 역시 르네상스 완숙기를 대표하는 라파엘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하는 바울이 시대의 석학들에게 이 새로운 진리를 설파한다. 등 뒤에 서서 팔짱을 낀 채로 바라보는 노인과 그 옆에서 무릎 꿇고 앉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이야기에 턱을 손으로 궤고 집중하는 청년, 그리고 바울 앞에는 이 이야기에 미심쩍어하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고민하는 이도 있다. 가운데 인물은 어떻게 저런 말들이 가능할까 하는 표정으로 바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옆에서 이미 반은 무릎 꿇은 젊은이는 양 손을 앞으로 내밀어 적극적으로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파문을 일으킨다. 평안하고 달콤하고 매력적인 십자가 구원은 없다. 듣는 이를 고뇌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우리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났다는 복음의 핵심이 어찌 순순히 수용되겠는가! 바울이 전하는 증언은 바울 개인의 연구와 사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늘의 주님께서 바울에게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체험하게하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증언이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양 손을 들어 표현했다. 바울은 그것을 믿었고 그 믿음이 세상을 뒤집었다.
당장 새로운 인생과 역사(New Normal)가 시급한 오늘, 교회는 이 믿음으로 세상을 돌파해야 한다. 우리가 증언하는 복음은 죽음에 이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코로나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지금이야말로 복음의 증언이 절실하다.
교회가 이 증언의 주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