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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5. 존 에버렛 밀러 경,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 14*10.8cm, 1864년, 런던 테이트 미술관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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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0년 11월 13일 09시 30분 09초

<2020.11.15. 주보 그림>
존 에버렛 밀러 경,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 14*10.8cm, 1864년, 런던 테이트 미술관

시대의 권력자와 최하층 불행한 여인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줄다리기를 한다. 억울함과 분노에 가득 찬 여인은 무력한 인물임에도 자신의 염원을 거두지 않는다. 틈만 나면 한을 풀어 줄 재판관을 찾아가 매달린다.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던 시대에 이런 장면은 놓치기 싫은 재밋거리다. 여러 사람들이 눈 크게 뜨고 둘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다. 어떤 이는 의자 뒤에 가려서 안 보이자 턱걸이를 하면서까지 이 광경을 보려고 한다. 모든 이들의 이목이 쏠린 시대의 관심사다.
재판관 옆의 젊고 총명한 서기는 사건의 전말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역시 빈 틈 없이 노련한 재판관이다. 서기는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로서 객관적이다. 엄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의 기초다. 그러나 신앙은 객관적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학 실험하듯이 관찰해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내 삶 전체를 투여해서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다. 그래서 신앙은 과학적일 수 없고 실존적이다. 이 차이를 과학적 현대인들이 수용할 때 신앙의 길이 보일 것이다.
여인은 두 손을 모으고 간청한다. 제지하는 경비들을 뚫고 기어코 재판관 앞에까지 와서 통사정 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난처한 경비는 어떡하든지 여인을 떼 내어 밖으로 끌어내려 한다. 경비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지렛대로 삼고 양 손으로 여인을 잡아끈다.
이건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것이라고 손사래 치는 재판관은 이빨을 드러내고 눈은 게슴츠레 뜨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린다. 노련하면서도 정의는 별로 추구하지 않는 권력자다. 교만하고 안하무인의 인물이다. 더군다나 그의 오른손은 여인의 목덜미까지 뻗쳐있다, 나쁜 손이다.
예상된 결과는 비관적이었다. 이 재판관은 결코 여인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었다. 교활하게 자기 이익만 챙기고는 끝내 자리를 박차고 들어가 버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이 알려주신 비유의 결말은 결국 이 불의한 재판관이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딱 하나–실망치 않고 끝까지 매달린 여인의 간절함이었다. 이 여인이야말로 얍복 강가에서 환도 뼈가 부러지면서까지 하나님께 매달려 응답 받은 야곱의 신약 판이다.
주님은 덧붙이셨다, 불의한 재판관도 이렇게 실망하지 않고 요청하면 안 들어줄 수 없는데,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영원히 감사할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