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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7. 주보 그림> 렘브란트, 병자들을 치유하는 그리스도, 27.8*38.8cm, 1649년, 에칭,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 17세기 바로크 미술에서, 로마 가톨릭에 카라바조가 있다면, 개신교에는 렘브란트가 있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삶의 쓰라림이 묻어 있고, 우리들 일상이 그대로 표현되어서 사실감이 가득하다. 그리고 정말 복음적이다. 아마도 개신교가 가장 사랑한 화가라면 렘브란트를 꼽아야 할 것이다. A4 용지보다 좀 큰 크기의 동판화인데 렘브란트는 여기다가 참으로 많은 성경 이야기를 저며 넣었다. 다 볼 수가 없어서 한 부분만 본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다. 주님은 가운데서 빛을 발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어린 아기를 안고 주님께 오는 여인을 베드로가 손으로 제지하자 주님은 손을 뻗어 아기를 영접하신다. 예수님의 오른쪽 아래로 여러 사람들이 몰려왔다. 모두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인생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픔이다. 몸과 마음이 아프다. 개인의 삶과 사회적 관계가 고통스럽다. 하다하다 결국 소문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맨발에 몸을 제대로 못 가누고 겨우 앉아 있는 여인은 눈이 거의 풀렸다. 거적 위에서 겨우 오른손을 들어 간청한다. 그 옆의 여인들-노파와 젊은 여성-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는 간절히 부탁드린다. 그 옆의 남자는 걷지 못한다. 짧은 목발을 짚고 참 어렵게 먼 길을 찾아왔다. 그의 소원은 단 한 가지다. 일어나 걷는 것, 우리가 날마다 만보 걸었네 하며 손쉽게 하는 걷기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소원이다. 그 옆의 남자는 아예 수레에 실려 왔다. 혼자서는 올 수도 없어서 친지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올 수 있는 중증환자다. 이를 데리고 온 것 같은 남자가 옆에서 손으로 가리키며 한번 봐달라고 한다. 몸과 마음의 질병으로 인생을 고통 속에 산 사람들이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어찌 그 시대뿐이겠는가. 이 환자들은 어찌되었을까. 예수를 만난 모든 이들이 올 때는 눈물과 한숨에 잠겼지만 예수를 만나고 돌아갈 때는 노래하고 감사하며 걷고 뛰면서 갔다는 것이 복음이다. 이 복음의 역사가 지속되어야 한다. 교회는 온갖 이유로 짓눌리고 아파하는 사람과 시대를 치유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은 교회가 치유자가 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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