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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4. 주보 그림> 얀 텡나겔(1584~1631/네덜란드), 엘리사와 두 아들이 있는 과부, 34*45cm, 1624년 어느 민가로 향하는 엘리사를 한 여인이 절규하며 불러 세웠다. 동행하던 젊은 제자는 발걸음의 방향은 바꾸지도 않은 채 몸만 뒤로 돌렸다. 엘리사는 몸을 돌이켜 여인을 향하고는 무슨 일인지 듣는다. 내 남편이 죽었습니다 - 여인의 울부짖음이 얼마나 애절한지 민가 부엌에서 일하던 노파까지도 밖을 쳐다볼 정도였다.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호소하는 여인의 이야기는 안쓰럽기만 하다. 남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엘리사를 신실하게 섬기면서 살았다. 이것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엘리사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호의호식하지는 못해도 이렇게 갑자기 죽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원망과 절망이 뒤섞인 부르짖음이다. 그녀의 가슴에 응어리가 진다. 더군다나 당장 두 아들까지도 종으로 팔려갈 신세다. 남편을 잃고 이제는 두 아들마저 비참한 삶으로 전락할 것이다. 큰 아들의 손이 간절하고 작은 아들은 눈물을 훔친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이 죽도록 내버려두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호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정성을 다해 신앙 생활하는데 남들보다 잘 되지는 못해도 더 나쁘게 되지는 말아야하는데 살다보면 의인이 고난 받고 악인이 번창하는 경우가 있다. 명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어서 더 답답하다. 오늘 이 여인이 그렇다. 차라리 이런 고난을 주시는 이유라도 명확하게 알려주시면 견디고 희망할 수 있는 근거가 되련만 우리 하나님은 끝까지 모호한 추측만 허락하실 뿐이다. 엘리사 제자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가족이 당한 어찌해 볼 수 없는 비극 앞에서 이 이야기는 한숨과 절망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해피엔딩이었다. 주님은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미 다 계획을 세워놓으셨다. 이 주님을 신뢰하고 내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오는 것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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