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안내 예배 담임목사 회의와위원회 교회학교 선교기관 커뮤니티
 
 

 
Untitled Document
20210502. 나의 아저씨 주민교회 (juminch)
f85026_KakaoTalk_20210501_154215814.jpg (188KB)
582
파일 올린 시간 : 2021년 05월 02일 01시 03분 46초

<2021.5.2. 주보 그림>

2년 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영했던 TV 연속극 ‘나의 아저씨’를 최근에 몰아서 보았다. 딸이 인생 드라마라고 추천했지만 제목이 좀 아리송하고 무엇보다 80분씩 16부작을 보려니까 엄두가 안 나서 아예 시작을 안했는데,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최근에서야 시청했다. 한 마디로 아주 잘 된 작품이다. 역사 기록과 논문이 있음에도 허구인 소설이 필요하듯이 다큐멘터리가 있음에도 가상의 내용인 영화‧연속극도 필수다. 그것은 각각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고유한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는 실제에서는 불가능한 꾸며낸 요소들이 있으나 그건 극이니 당연하다. 개인적으로는 전체 기조가 불교 문화적이어서 아쉬웠다. 그것이 싫었다기보다는 왜 기독교적 문화를 바탕으로는 이런 품격의 대중 작품이 안 나오나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럼에도 참 감동적인 장면이 많았고, 많은 시청자들을 눈물 나게 했다. 눈물은 공감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나온다. 이 작품의 배경이 일반인들과 무관한 상류층이나 엘리트 또는 부유층들이 사는 지역이 아니라, 평범한 서민의 가정, 일반적인 회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네 등 우리 일상과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보다 쉽게 동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극 중의 눈물에 동화될 수 있었다.

‘나의 아저씨’는 여러 가지 중요한 주제들을 담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은 안과 밖으로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우쳐 준다는 점이다. 가난하고 지치고 연약한 사람들뿐 아니라 안정되고 풍요롭고 건강한 사람들도 역시 그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아픔과 상처가 있다. 내 속의 상처를 스스로 보듬은 채 표시 안내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밖으로 표시하는데 점잖고 세련되고 격조 있는 이들도 있지만 반대로 무례하고 천박하고 뻔뻔하게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상처를 안고 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옆에 사람이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지금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두가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면서 부딪힐 때, 서로에게 말로 행동으로 상처를 덧내고 후벼 파는 이들도 있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달래주고 풀어주는 관계도 있다. ‘나의 아저씨’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극 중 여러 관계들에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잘 풀어냈다는 점이고 그 자연스러움이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할 수 있지 하는 공감을 불러냈다는 점인 것 같다. 상처 입은 사람의 부정적 표현(무례‧범죄‧뻔뻔함 등)을 불쾌해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그 아픔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할 때 마침내 편안함에 이르렀다(지안/至安).

나 자신과 이웃에 대한 측은지심이 이 잔인한 분노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