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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30. 주보 그림> 렘브란트, 감옥의 바울, 73*60cm, 1627년, 슈튜트가르트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이 바울의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어두움은 꼭 감옥에 갇혀서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교회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 때문일 것이다. 교회의 정의‧교리‧직제‧운영 원칙 등이 아직은 생소하여 이제 하나씩 만들어가는 시기이기에 교회마다 문제도 많고 물음도 많았다. 화가는 바울이 신발 한쪽은 신고 다른 쪽은 벗은 것으로 그렸다. 든든한 가죽구두를 신어야 어디든 거침없이 갈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의 왼쪽 발은 당장이라도 달려갈 태세다. 반면 오른발은 구두를 벗었다. 교회를 섬기고 사랑하는 교인들에게 말씀을 증언하는 것은 그 옛날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앞에서 신을 벗었듯이 두렵고 떨리는 경외감으로 충만한 일이다. 그는 일일이 여러 교회마다 당면한 과제를 끌어안고 고뇌하면서 해결책을 적어 보낸다. 이미 침대 위에는 써 놓은 책(서신)들이 쌓여있는데 거기다가 또 다른 두꺼운 문서를 집필하고 있다. 그냥 이야기라면 얼마나 가벼울까, 그가 준비하는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요 사람과 역사를 가르는 칼과 같기에 무겁다. 벗어져 넒은 이마와 잘 빗지 않은 머리카락 그리고 길게 늘어진 수염을 하고 아침부터 시작한 고단한 집필 중, 바울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노 사도로 하여금 쓰던 글을 멈추고 생각의 깊이에 잠기게 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대 사도 바울이나 흔한 현재의 목사에게나 목회는 여전히 그리 녹록치 않다.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는 처음부터 그랬고 목회란 본래 그렇게 고민 더미 속에 묻혀서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보는 것은 비록 감옥이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다. 좀 더 붉은 저녁 햇살보다는 밝아 아침 햇살인 것 같다. 햇살이 방 전체를 환히 비추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고뇌에 찬 바울의 얼굴 뒤를 밝게 함으로써 교회의 문제가 쉽진 않아도 풀지 못할 것은 아니고 곧 해결하여 선교에 정진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저 햇살이 오늘 너무 무거운 현실을 버티고 있는 한국교회에 닿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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