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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7. 의로운 나사로의 부활, 로마 조르다니 카타콤의 프레스코, 4세기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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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1년 06월 27일 19시 23분 48초

<2021.6.27. 주보 그림>

의로운 나사로의 부활, 로마 조르다니 카타콤의 프레스코, 4세기

복음서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썩는 냄새가 풀풀 나는 나사로를 예수님이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제 곧 일어날 주님 자신의 부활을 예고한 것이요, 메시아가 우리 가운데 존재하고 계심을 드러내는 강력한 계시였다. 이 지하 묘소의 화가는 모든 잡다한 것들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오직 살려내는 메시아 예수와 그에 의해 죽음의 세력을 풀고 살아나는 나사로만 등장시킨다. 가끔 우리 삶에서도 잡다한 것들은 모조리 빼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이처럼 거대하고 숭고한 의미를 품고 있는 장면의 그림 수준이 너무 조잡해서 맘이 짠하다. 예수님에게는 당대 로마식 복장을 입혔다. 메시아의 이목구비도 명확하지 않고 자세도 자연스럽지 않으며 심지어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무덤을 향해 뻗은 손조차 그리다 말았다. 더욱 가슴 뭉클한 것은 무덤 속에 붕대로 칭칭 감아 묶여 있는 나사로다. 자세나 세부 사항이나 표현 기법이나 유치원 수준이다. 이런 것도 성화에 들어갈 수 있을까.

무덤 속에 갇혀 온몸이 묶인 나사로에게서 이 그림을 그린 카타콤의 순교자들을 본다. 초대 교회 시대 로마 권력의 박해에 쫓겨 지하 무덤으로 들어간 기독교인들은 자기 자신을 나사로에 비유했을 것이다. 미동은커녕 옴짝달싹 못하게 포박되어 있는 카타콤의 삶, 햇빛 한줌 없는 지하 묘소에 살면서 끊임없이 피어나는 의심의 안개와 싸워야했던 사람들, 이들은 간절하게 자신을 나사로와 동일시하기 원했을 것이다. 오로지 예수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무덤 속에 들어간 이들에게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잘 그리지 못하면서까지 나사로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나사로의 부활을 부러워했을 우리 신앙의 선조들 앞에서 눈이 아파온다. 그 처절한 신앙의 사투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주민교회의 역사 초창기부터 함께 하셨던 고 양승자권사님의 장례를 마쳤다. 어느 순간 한 사람의 85년 평생 삶을 담았던 육신은 한 줌의 재로 돌아와 유족 품에 안겼다. 결코 멋지진 않지만, 언젠가 무덤 밖으로 나가 햇빛과 바람 마음껏 맞으면서 진짜 부활을 살고 싶어 했던 카타콤의 순교 신앙이 그 유골함의 허망함을 뚫고 우리 삶을 관통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