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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2.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독일어 판 책 표지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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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1년 09월 11일 23시 14분 26초

<2021.9.12. 주보 그림>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독일어 판 책 표지

우리를 자꾸만 괴롭히는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년)는 ‘죄와 벌(1866년)’을 통해 인간 구원의 문제를 던졌다. 

당시 러시아의 수도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획도시였던 상 페테르부르크는 농노해방으로 농촌에서 무작정 상경한 빈민들이 도시 한쪽에서 벌레처럼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도시는 강도 있고 나무도 있고 멋진 건물도 있지만 온통 잿빛이다. 하늘은 잔뜩 어둡고 무겁게 도시를 짓누르고 있으며 이 죽음을 밝혀줄 십자가의 빛은 희미하게나마도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위에서 대각선으로 불어내리는 초겨울바람은 매섭고 차가워서 나무에서는 사정  없이 이파리들을 떨구고 하늘에서는 연기를 몰아가며 길을 걷는 사람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잔뜩 몸을 움츠러트린다. 

한 인간이 서 있는 시대 전체가 음울하기만 하다. 그는 어디를 가는 걸까. 희망으로 가는 걸까, 구원으로 가는 걸까, 혹시 파멸로 끌려가는 건 아닐까. 

결국 가난한 대학생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빈곤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이(蝨) 같은 고리대금업 노파를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것은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준비하고 정당한 이성적인 살인이었다. 우매한 대중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람이 필요하며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살인까지도! 결국 라스콜리니코프는 모든 것이 허용된 인간, 그가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죄는 단지 살인이 아니다. 러시아어에서 죄(罪)는 ‘선을 넘다’는 뜻이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선을 넘어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 결국 인간이 곧 신이라는 19세기 서유럽에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이성의 겨울바람이 미친 듯이 러시아 사회를 휘몰아칠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의 저주를 느낀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볼 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는 벌(罰)은 자기 분열 또는 자살이다. 인간 삶의 가장 끔찍한 형벌이다. 현대 판 예레미야의 저주다. 결국 죄의 삯은 사망이다.

과학과 자본의 힘으로 인간의 한계선을 넘어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오만하게 소리치는 21세기의 현대인들은 예레미야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던지는 이 음울한 목소리를 경청해야만 한다. 이미 우리는 이 가공할 파멸을 향해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 말씀을 선언하라고 존재하는 거다. 그러느라고 목이 쉬고 미쳤다는 조롱을 감수하라는 거다, 이제 딴 소리 좀 그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