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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4 작자 미상, 솔로몬의 재판, 오스트리아 프라우엔버그 순례교회 사제관 천정 프레스코, 17세기, 루벤스의 동명 작품(1617년)을 누군가가 거의 모사했다.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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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1년 11월 22일 23시 44분 35초

<2021.11.14. 주보 그림>

작자 미상, 솔로몬의 재판, 오스트리아 프라우엔버그 순례교회 사제관 천정 프레스코, 17세기, 루벤스의 동명 작품(1617년)을 누군가가 거의 모사했다. 

같은 날 태어난 두 아이의 운명이 극단적으로 갈렸다. 바닥에 누운 아이는 이미 눈을 감았고 허공에 들린 아이는 죽임의 문턱에 닿아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죽음은 운명이라지만 아직 살아있는 저 아이는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 아이에겐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의 목숨이 소중한 만큼 삶과 죽음을 결정해야 하는 솔로몬의 어깨가 무겁다. 역사 초기로 갈수록 모세처럼 권력자의 주업은 판결이었다. 과학 수사가 발달한 지금도 선악의 판단은 어려운 것인데 3천 년 전 재판이란 그것도 생사를 결정할 판결은 지상 전체의 무게와 같다. 눈 똥그랗게 뜬 아이가 천진난만하여 보는 이들을 더 긴장하게 만든다. 

아무 죄도 없는 이 아이가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것은 전적으로 두 여인의 갈등 때문이다. 서로가 죽은 아이는 자기 아이가 아니고 살아 있는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어려운 문제의 판결이 솔로몬에게 배당되었다. 

궁중의 신하들과 경비병까지 모든 촉각을 곤두세운다. 왕관은 멋지게 썼지만 아직은 풋내 나는 솔로몬은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공부한 책에 나오지도 않고 이런 경우는 본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 그러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솔로몬은 살아 있는 아이를 둘로 갈라서 두 엄마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라는 폭탄선언을 내린다. 아무도 예상 못한 판결이다. 그러나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신적 권위를 가진 왕의 판결이다. 

똑같이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던 두 엄마 사이에 왕의 판결에 따라 전혀 다른 대응이 나왔다. 왕을 바라보는 엄마는 눈물 그렁한 눈으로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고 항변한다.

다른 엄마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그대로 따르려 한다. 이미 그는 하얀 앞치마를 들어서 아기 반쪽을 받을 준비를 마쳤다. 그의 눈이나 얼굴 어디에서도 아픔의 자국을 발견할 수 없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망나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이들의 목을 자른 베테랑 사형집행인이다. 한 눈에 거친 인간임을 알 수 있다. 헝클어진 머리와 몸 여기저기에 난 털이 그의 인생과 성격을 보여준다. 이제까지는 왕이 명령하면 주저 없이 집행해왔을 그였다. 그런데 인정사정없는 그도 이번만은 주저주저한다. 칼을 뽑으려하면서도 여전히 왕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는 왕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 ‘임금님 정말 이 아이를 반으로 나눠요? 진짜요? 그게 말이 돼요?’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솔로몬은 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맞이하는 두 여인의 구별된 반응을 통해서 진짜 엄마와 가짜 엄마를 구별해 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라는 수식어에 하나도 손색이 없다. 이것은 단편적인 반짝 아이디어가 아니다. 상황을 총체적으로 살피고 새가 하늘에서 땅을 조감(鳥瞰)하듯이 식별한다. 선악의 문제는 인간의 능력 밖으로 뛰쳐나가는 경우가 있다. 인생과 역사에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