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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20. 주보 그림
1982년 한신대 1학년 때, 군부독재의 숨 막히는 억압과 분단의 고통 가운데에서 그 시대를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숨통을 틔워준 노래책 하나가 교정에서 배포되었다, 젊은 예수!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가 보통 부르면서 은혜 받는 복음성가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의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 책 안쪽에는 연필로 그린 예수님의 세 가지 초상화 세트가 삽입되어 있었다. 그 중 인간이 되신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은 한없이 자애로운 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전통적이고 그리 낯설지 않은 예수님이다.
지금은 이 예수님이 좋은데 80년대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희구하는 시대였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 분단을 넘어서서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 등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사회의 변화를 갈구하는 시대였기에, 당시 청년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모습은 혁명가 예수였다. 긴 머리카락이 사자 갈기처럼 휘날리고 입은 크게 벌려 피를 토해내는 것 같으며 그 커다란 눈동자는 우리들의 변화를 촉구하는 뜨거운 모습이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움찔해지는 단호한 예수님이었다.
평상시와는 너무 다르게 부모님 장례도 허락하지 않고 가족들과 이별의 인사도 할 수 없도록 급박하게 몰아치는 주님은 결국 2천년 동안 그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추상같은 말씀을 던지셨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누가 9:62)
지금 예수를 따르고자 결단한 사람은 그 즉시로 모든 것을 단절하고 단호하게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결심은 했는데 다시 미련이 남아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우왕좌왕하는 것은 예수님이 불을 지른 하나님 나라 운동에 적합하지 않다는 차갑고도 분명한 말씀이다. 기독교 신앙은 때로 하나님이냐 우상이냐 교회냐 세상이냐 신앙이냐 물질이냐를 명백하게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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