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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7. 주보 그림>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년), 이삭 줍는 사람들, 83*111cm, 1857년, 오르쉐미술관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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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2년 08월 06일 23시 20분 06초

<2022.8.7. 주보 그림>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년), 이삭 줍는 사람들, 83*111cm, 1857년, 오르쉐미술관


프랑스가 사랑하고 반 고흐가 사랑했던 농민 화가 밀레의 대표작이다. 밀레는 농촌의 삶을 통해 19세기 유럽의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에 맞서 구원을 찾았다. 특히 사회주의의 기운이 무섭게 발흥하는 당대의 유럽에 비참한 현실을 그림으로써 사회주의자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을 담고자하는 그의 신념을 막을 수는 없었다.


광활한 대지의 나라 프랑스 농촌에서 숨 막히는 추수가 한창이다. 멀기도 하지만 먼지 가득하여 흐릿한 저 뒤편의 많은 일꾼들이 추수에 여념이 없다. 곡식을 베고 낟가리에 옮기는 남녀의 사람들이 땀처럼 뒤엉켜 있다.


대지는 이미 도시의 부재지주들이 차지하였고 원래 농부들은 한낱 소작농이나 임노동자로 전락하였다. 한시도 쉬지 못하고 노동하는 사람들 옆에는 주인으로부터 고용된 관리인이 말을 타고서는 손을 들어 더 열심히 일하라고 재촉한다.


바쁘기는 화면 왼쪽도 마찬가지다. 작은 산처럼 세워지는 거대한 낟가리들과 그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차에 꾹꾹 눌러 싣는 볏단들, 그 옆에는 희미하지만 주인 같은 사람이 욕망과 만족의 허리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것 같다.


하늘엔 새떼들이 높이 나는데 야속하게도 아직 해는 지지 않고 있다. 이 힘겨운 노동은 하늘이 붉게 물들어서야 겨우 끝나는 시간을 향해 서두를 수 있고, 아마도 검붉은 하늘과 앞을 잘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져서야 마칠 수 있을 것인데 아직은 너무 창창하기만 하다. 새들이 부럽다.


밀레는 여기에 오늘의 주인공 세 여인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여인들의 모자 색깔이 그리스 전통 미의 세 여신을 빗댄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 여성들에게는 너무나도 고급스러운 여신들을 갖다 대는 것조차 민망하다.


대지주의 추수가 지나간 밭에는 이미 남아 있는 것이라곤 별로 없다. 곡식 줄기는 바짝 잘려나가서 밭은 바로 흙이 드러나 있고 돌도 있다.


세 여인의 얼굴은 이미 강한 햇살아래 검게 그을렸다. 여성이라기보다는 그냥 농촌노동자다. 옷은 모두 낡았고 몸은 지쳐있다. 이들에게 저 멀리서 바쁘게 노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부러움의 대상이다. 저들은 힘들지만 노동이 끝나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그러한 노동으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다. 이들에게 겨우 허락된 것은 추수하고 한참 지나간 자리에서 얼마 남지도 않은 이삭들을 주울 수 있는 것뿐이다.


땅에서 직접 이삭을 줍는 것은 고된 노동이다. 검고 투박한 손은 더럽고 밀 줄기와 흙에 긁혀서 피가 나기도 한다. 베르사유 궁전의 여인들처럼 손을 곱게 단장하거나 장식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 여인들은 노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저렇게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 평생 노동한 허리가 괜찮았을까. 저 허리로 여러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업어서 키우고 또 이삭 줍느라 제대로 펴지도 못하게 혹사한 허리가 이상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내 허리에 통증이 전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힘겹게 줍고 있는 결과물이 너무 형편없어서 아프다. 저 멀리 거대한 곡식 단과 너무나도 대조적이어서 분노가 일어난다. 부와 가난의 확연한 대조야말로 유혈이 낭자한 사회혁명을 잉태하는 밭이다.


밀레는 고단한 농촌의 삶, 가난과 상처로 아픈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더 열악한 여성노동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당신들이야말로 역사의 주체라고, 그 노동 속에 희망이 있다고! 이런 밀레를 반 고흐가 사랑했고 오늘 우리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