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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4. 주보 그림> 잃은 양을 찾으시는 예수님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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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2년 09월 04일 09시 55분 41초

<2022.9.4. 주보 그림>


잃은 양을 찾으시는 예수님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다수에 의한 양적 가치 판단이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여기에 매몰될 때 인간은 깊이를 상실하고 하나의 물건처럼 되기 쉽다. 예수님의 잃었던 양의 비유는 우리의 양적 사고와 가치관에 정면으로 충돌한다.


목자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위험한 절벽에 매달려 팔을 뻗는다. 실제로 가능한 자세는 아니지만 화가는 위험 상황을 극대화했다. 낭떠러지를 향해 손을 뻗은 목자는 왼손으로 바위 끝을 겨우 잡고 있을 뿐이다. 이미 몸의 무게는 아래로 쏠려 있다. 왼팔에 힘이 빠지거나 바위가 부분적으로 부서지기라도 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만다. 온몸이 바짝 긴장하여 굳어지면서 사시나무처럼 떨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무모한 짓을 실행하는 것은 오직 하나 그 아래 간신히 버티고 있는 양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 양은 홀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헤매다가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철없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죽음의 공포가 목자를 향한 간절함으로 나타난다. 양은 오로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손가락 끝의 세포 하나까지 온 힘을 다하는 목자에게 눈을 맞추고 있다. 구원은 거기에만 있기 때문이다.


위험한 것은 낭떠러지만이 아니다. 계곡의 지배자 독수리들이 좋은 먹잇감을 포착하여 세차게 날아오고 있다. 독수리는 실로 무서운 맹금류다. 그의 부리는 어떤 동물도 찢어먹을 수 있고, 굵고 튼튼한 발과 발톱은 사정없이 먹잇감의 피부를 뚫고 들어간다. 꼼짝 못하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양 한 마리 낚아채서 하늘에서 떨어뜨려 죽인 다음 다시 둥지로 가져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목자만 없다면 말이다.


아흔 아홉 마리 양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목자가 한 마리 양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행동이 옳은 것일까. 이 양 살리려다가 수십 마리 양이 희생된다면, 다른 양들의 목숨은 소중하지 않은가.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도 주님은 그렇게 하셨을까.


비유는 초점이 있다. 모든 것이 다수의 논리가 적용되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하나’의 가치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생명은 단순히 몇 개 중의 하나라고 양적으로만 볼 수 없는 고귀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무시될 수 있다.


‘진보’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소수자/약자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양적 사고와 가치가 덩달아 확대된다. 그러기에 교회는 다수의 가치를 근본으로 하는 사회 속에서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의도적으로 강조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