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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9. 주보 그림> 헨리 태너(1859~1937년), 무덤 앞의 두 제자, 1906년, 130*106cm, 시카고미술연구소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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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3년 04월 10일 22시 06분 16초

<2023.4.9. 주보 그림>


헨리 태너(1859~1937년), 무덤 앞의 두 제자, 1906년, 130*106cm, 시카고미술연구소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그만큼 충격적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은 깊은 한숨만 나오게 했다. 그런데도 한 사람은 두려운 새벽에 홀로 무덤을 찾았다. 중간에 어떤 일을 만날지, 무덤 돌은 어떻게 굴려야 할지, 시신을 보면 어찌해야 할지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길을 나서 무덤에 이르렀다. 원래 사랑은 대책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무덤을 찾을 생각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마리아가 주님의 무덤에 간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에 대한 이 사랑이 우리 자신을 구원한다.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한 마리아는 너무 놀라서 그 길로 바로 되짚어와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놀라운 소식에 헐레벌떡 무덤에 다다른 두 제자가 무덤 앞에 서 있다. 세상으로부터 유폐된 채 어두운 죽음의 공간이어야 할 무덤은 이미 문이 열려 있었다. 더는 근접 못 할 닫힌 공간이 아니다. 도리어 빛은 죽음의 공간인 무덤 안으로부터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어디가 진짜 죽음의 공간이고 어디가 삶의 공간인가!


화가는 걸음이 느려 뒤늦게 도착했으나 먼저 무덤에 들어간 베드로를 앞에 그렸다. 그는 눈을 아래로 깔고는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심장에 대고 있다. 대제사장 집 뜰 안에서 벌어지는 재판을 지켜보며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잘못에 대해 참회하는 것일까. 이사야처럼 거룩한 경험 앞에서 환희보다는 두려움과 회개가 앞서는 모습이다.


더 젊어서 먼저 무덤에 이르렀지만, 무덤에는 들어가지 않다가 베드로가 들어간 다음에야 들어가 보고 믿은 요한이야말로 부활의 광채를 온 얼굴과 목 아래 가슴까지 받고 있다. 화가는 요한 중심의 요한복음 보도에 충실하게 장면을 그렸다. 요한은 눈을 크게 뜨고 빛이 나오는 무덤 쪽을 희망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부활을 본 요한의 선포를 통해 어두운 죽음의 역사가 새로운 생명의 역사로 전환될 것이다.


믿음은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부활의 빛에 힘입어 내 인생과 역사의 현실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