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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18. 주보 그림>
베리 공작의 기도서, 수로보니게 여인, 1410년 경
프랑스 샤를 5세의 동생인 베리 공작은 당시 프랑스 영토의 1/3을 소유하고 있는 자산가로서 문화‧예술을 아낌없이 후원하였다. 공작의 후원으로 당대 화가 랭부르 3형제가 1년 달력 형태의 기도서에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이것은 중세 유럽인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이 기도서에 사용한 물감이나 양피지가 엄청나게 비싼 것이라 기도서 이름이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라고 붙여질 정도였다. 화가는 달력 한 장면으로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청을 그려 넣었다.
수로보니게는 이스라엘 북부 지역으로 시리아-페니키아를 말한다. 정통 유대인이 보면 이방지역 출신이다. 구원으로부터 배제된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은 버려진 땅과 제쳐진 인생을 찾아 다니셨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한적한 중세 유럽 마을이 배경이다. 화가는 1,400년 시간과 근동의 공간을 넘어 예수님이 지금‧여기 나타나신 것처럼 그렸다. 2,000년 전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자기 시대의 눈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복음은 그저 골동품에 머물고 만다. 복음은 시대마다 재해석되어야 한다.
여인이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청한다. 전체적으로 여인의 자세가 어색하다. 팔이나 손가락은 뻣뻣하고 얼굴도 여인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직은 르네상스가 무르익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여인은 간절하다. 사랑하는 딸이 더러운 귀신에 들려서 전혀 사랑스럽지 않을 행동을 하며 고통 중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아야 하는 어미의 마음은 무너지고, 여인의 삶은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사랑의 예수님이 보인 반응이다. 이 가련한 여인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위로하면서 일으켜 세우고 딸을 고쳐주셔야 마땅한데, 웬일인지 주님은 여인의 간청으로부터 돌아서셨다. 90도로 돌아서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님이 기이할 뿐이다. 이런 예수님이 제자들까지도 낯설다. 제자 둘은 불쌍한 여인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동정하고, 베드로와 요한으로 보이는 두 제자는 예수님께 항의하는 것 같다. 복음서에 드문 장면이다.
주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여인을 향해 비수를 날린다 ;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 7:27)
이게 진정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인가? 이 불쌍한 여인의 간청을 거절하는 것도 모자라 개 취급하셨다. 용서와 사랑과 인간 존중의 예수님과 정반대로 차별과 혐오와 배제와 인격 살인의 모습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에 대한 여인의 대답이었다 ;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막 7:28)
여인이 자존심과 분노를 넘어 주님의 비인격적 대응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다시 간청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절실함-뼛속에 사무치도록 강렬한 바람이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랑과 이제 유일하게 남은 길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절박한 현실이었다.
더는 방법이 없고 오직 예수님만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딸을 그토록 괴롭히던 귀신이 드디어 나갔다. 회복한 딸은 침상에 누워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600년 전 유럽인들은 이 기도서 삽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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