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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 주보 그림> 알렉산드로 랑기아시, 프리모 레비 전기 표지화, 2023년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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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3년 10월 03일 10시 47분 22초

<2023.10.1. 주보 그림>


알렉산드로 랑기아시, 프리모 레비 전기 표지화, 2023년


2019년 봄, 로마를 방문하여 과거 로마의 찬란한 문화와 영광을 보았다. 그리고 밀라노에 가서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직접 보았고, 다음 날에는 토리노에 가서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묘를 찾아갔다. 프리모 레비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그의 무덤에 꽃 한 송이 놓고 싶었다. 토리노 공동묘지의 으리으리한 무덤들을 지나 거의 끝쪽에 허름하고 조촐한 유대인 묘역이 있는데, 거기 레비의 묘가 키 작은 단풍나무와 함께 있다. “프리모 레비, 1919~1987, 174517”이라는 숫자만 새긴 단출한 무덤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나 토리노대학 화학과를 졸업한 레비는 2차 대전 말기인 1943년에 파시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에서 1년 정도 수용되었다. 평균 수명이 석 달이라는 죽음의 아우슈비츠에서 5%의 생존율로 살아남아 자신이 경험한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증언 문학의 대표가 되었다. 서경식 선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라는 책과 레비의 대표작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우리 사회를 전율케 했다. 그의 무덤에 새긴 174517이란 숫자는 수용소에서 그의 팔에 새긴 수인번호다. 무덤에서도 아우슈비츠의 현실을 잊지 말자고 호소하는 것 같다.


묘소를 나와 한참을 찾아서 그가 살던 아파트에 도착했다. 5층 건물에 지금은 그의 아내가 쓸쓸히 살고 있다고 들었다. 입구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어떤 주민이 문을 열고 나오는 틈을 타서 1층까지만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4층이었던 그의 집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 있는 쪽으로 떨어져 자살한 곳도 보았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참혹했던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남은 이 질긴 생명력의 지성인이 정작 자유인이 되어 그토록 그리워하던 자기 집에 돌아와 살다가 67세에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왜 그랬을까, 그래서 찾아보고 싶었다.


올해 이탈리아에서 출판한 레비의 전기 표지다.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지긋지긋하고 두려운 줄무늬 파자마를 더는 입지 않아도 된다. 그는 말끔하게 평상복으로 차려입었다. 머리도 수염도 안경도 단정하다. 이제 누구도 그를 가두거나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하지 못한다. 그의 기록은 세계적인 명성도 얻었다. 그는 높은 아우슈비츠 철조망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는 수용소 안인가, 밖인가. 당연히 밖이어야 하지만 철조망 기둥의 끝이 레비가 서 있는 쪽으로 구부려져 있다. 그렇다면 지금 레비는 자유의 몸으로 수용소 안에 서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았음에도 오히려 자유의 세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였다는 것일까. 아우슈비츠는 철조망 밖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


프리모 레비를 통해서 ‘증언 문학’은 새로운 장르가 되었다. 레비가 증언한 아우슈비츠는 자기가 직접 듣고 보고 체험한 것만 기록했다. 대개 이런 경우 남에게 들은 이야기 등을 과장하여 전함으로써 흥미와 관심을 끄는데 레비는 그렇지 않았다. 건조하고 차갑게 자신의 직접 체험을 기록하려 했다. 그의 목적은 간단하다-‘과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내가 레비에게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런 자세-자기가 체험한 것만을 증언하는 엄격성 때문이었다. 나는 스스로 그리스도의 증언자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증언자다. 만 10년 전, 내가 주민교회에 부임하면서 내 개인 블로그 대문을 이렇게 구성해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증언자의 삶은 피곤하면서도 행복하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증언자로 부르심에 감사하면서 살기-주민교회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 첫째 사명이라면 증언하는 우리의 자세는 프리모 레비처럼 내가 듣고 보고 만진 것을 증언하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듣고 보고 만지고 호흡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증언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프리모 레비는 그런 점에서 느슨해지고 습관화되기 쉬운 우리를 내리치는 죽비(竹篦)이리라. 그래서 나는 굳이 로마에서 토리노까지 먼 프리모 레비의 길을 찾아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