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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0. 주보 그림> H.O.태너, 수태고지(Annunciation), 144*181cm, 필라델피아미술관, 189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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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3년 12월 13일 00시 41분 50초

<2023.12.10. 주보 그림>

H.O.태너, 수태고지(Annunciation), 144*181cm, 필라델피아미술관, 1898년

갑작스러운 천사의 방문에 소녀는 침대 끝 머리맡으로 물러나 앉았다. 중동 지역 평범한 농촌 복장의 소녀는 자다가 일어나 갑자기 환해진 방과 천사의 광채를 보고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서양 백인 여성이 아니라 동양 중동 여성의 평범한 얼굴에다가 흔한 후광(Aura)이나 성인임을 드러내는 상징물(Attribute) 하나도 없다. 가브리엘은 밝은 빛으로 눈부시게 소녀를 찾아왔다. 천사의 방문은 한순간에 공간을 신비로움으로 뒤덮었다. 특별한 형체 없이 위에서 아래로 쏟아 내리는 빛으로 묘사된 천사는 항아리를 얹어 놓은 벽의 나무 선반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십자가를 이룬다. 메시아의 운명에 대한 예고인가. 천사를 바라보는 소녀의 큰 눈은 두려움과 의심과 놀라움을 함께 머금고 있다. 그는 오그라드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어 두 손으로 깍지를 끼고 자신에게 닥친 엄연한 현실을 마주한다. 


소녀는 그러나 이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두렵고 떨리지만, 눈을 크게 뜨고 자신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의 메신저를 응시하고 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마리아의 두려움은 무엇이었을까, 밤중에 갑자기 찾아온 천사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천사가 알려준 혼전 임신 소식이 불러올 두려움일 것이다. 2천 년 전,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약혼을 앞둔 여성이 약혼자와의 관계에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임신했다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집은 물론이고 약혼자 가정, 동네와 지역 사회로부터 부정한 여인으로 지목당할 것이고, 어쩌면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인생을 끝낼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누군들 두렵지 않을까. 이 공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마리아는 담담히 고난의 섭리를 자신의 인생 속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마침내 지극히 평범한 소녀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영원한 인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