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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11. 주보 그림>
정오의 휴식, 밀레(1866년), 고흐(1890년)
예술에서 존경의 표시로 어떤 부분을 모방하는 것을 오마주(Homage)라고 합니다. 영화감독‧음악가‧미술가는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의 작품을 빌려와서 자기 작품 속에 넣어서 공개적‧작품적으로 존경을 표시합니다. 오마주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몰래 다른 작품을 훔쳐다가 사용하는 표절과 다릅니다. 표절은 도둑질이고 오마주는 경의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화가 고흐는 정신적‧육체적‧경제적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고흐는 어려울 때 렘브란트‧들라크루아‧밀레의 그림을 모사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오마주입니다. 특별히 고흐는 프랑스 농촌과 농부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밀레의 작품을 좋아해서 20점이나 모사했다고 합니다. 밀레는 19세기 산업화 시대의 농촌과 농부의 노동, 그리고 고단한 인간을 그림으로써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1866년 밀레는 ‘정오의 휴식’을 A3 정도 크기의 종이에 파스텔로 그렸습니다.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농부는 땀범벅이 되어 추수합니다. 낟가리의 크기는 농부의 노동량을 보여줍니다. 대지는 뜨겁고 노동은 힘들고 정오의 태양이 직선으로 내리쬐는 시간에 농부 부부가 낟가리 아래에서 잠시 단잠을 자고 있습니다. 옆에는 노동의 도구인 낫 두 자루가 있고, 남편은 신발도 벗은 채 잠을 잡니다. 몸은 흙투성이고 발은 노동으로 굴곡져 있습니다. 남편은 조금이나마 낟가리 그늘이 얼굴을 덮고 모자로 햇볕을 가렸습니다. 부인은 그마저도 없이 뙤약볕에서 잠이 듭니다. 잠잘 수 없는 환경이지만 노동에 지친 부부는 휴식합니다. 입을 반쯤 벌리고 잠든 농부는 마치 시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죽음 같은 노동입니다. 밀레는 그림을 통해 농부의 고된 노동과 빈한한 삶을 애처롭게 바라봅니다. 이것이 화가의 사랑법입니다.
밀레를 사랑하고 존경한 고흐는 20여 년 후, 이 그림을 모사합니다. 고흐는 인물의 배치를 바꾸고, 두 배 이상 큰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습니다. 고흐가 밀레에게 헌정한 이 그림은 재료와 색감과 붓질 때문에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지만, 농부와 노동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과 사랑은 더 격렬하게 물결칩니다.
여기도 산더미처럼 높은 낟가리가 있습니다. 농부들은 완전히 지쳤습니다. 지옥 같은 노동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태양은 중천입니다. 파란 하늘과 노란 들판이 이제까지 쏟아부은 노동과 앞으로도 더 짜내야 할 노동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한낮의 더위만큼이나 숨 막히게 합니다. 하늘은 너무 파랗고 들판은 너무 넓어서 야속하기만 합니다. 부인은 다소곳한 자세로 꿀잠을 자고 남편은 허연 이를 드러내면서 곯아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부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건 고단한 삶의 현실보다 더욱 깊은 사랑이 물결치기 때문입니다. 태양은 여전히 뜨겁고 노동은 육체를 질식시키지만, 고단한 여건에서도 이 농부 부부는 서로 잇대어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들을 따뜻한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격렬한 붓질로 우리에게 증언한 고흐는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이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뜨겁게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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