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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권의 식민지배와 제3세계의 빈곤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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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님이 2003-04-02에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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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복음을 제
3세계에 전파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엄청난 저항이 있음을 알게 된다. 기독교에 관한 한 제 3세계 국가들 대부분에서의 분위기는 한국에서와는 경우가
전혀 다르다. 세계지도를 보면 우리는 "10-40창"이라 불리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지역은 적도 북위 10도에서 40도에 걸치는
지역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가로질러 뻗어있다. 이 지역과 해당지역 북쪽의 터키·알타이 지역에는 전세계에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살고 있고, 이슬람권 거의 대부분도 여기에 포함된다. 최근까지 이슬람권이 아닌 곳은 공산권이었다. 이제 다수의 구 공산권 국가들이 이슬람화 하고
있다. 이 사람들 중 상당수는 기독교에 대한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거기에는 종교적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사회학적
근거가 있다. 그 근거는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공산주의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기원은,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는데 있다. 교회는 대지주들의 손에 넘어갔다. 정치가들과 성직자, 신학자들은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 논했고,
실제적인 문제는 주도면밀하게 회피했다. 여러 세기가 지난 후,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토지가 없는 다수민중들이 봉기해 이슬람, 혹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였다. 교회는 이슬람과 공산주의에 대항해 성전(聖戰)을 선포했고(나는 기원후 7세기부터 12세기에 대해서뿐 아니라 20세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교회는 이제까지 단 한번도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으며 보상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한 적이 없었다.
19세기에 또다른 현상이
발생했다. 기독교권 국가들은 강성해져서 10-40 지역에서 식민 제국을 건설했다. 옛날 지도를 한번만 쓱 봐도 해당 지역이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제국들은 모두 기독교국가임을 자임했었다. 식민주의자들 바로
뒤이어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파했다. 그들이 전파한 복음이란 무엇인가? "제국주의자들이 당신네 나라를 약탈하고, 당신들을 빈곤에 허덕이게
만들며, 당신네의 자유를 빼앗도록 그냥 두시오. 당신들은 다만 주님께서 저 세상을 주실 것을 신뢰하시오. 그러면 주께서 이 생을 견딜 은혜를
주실 것이오."
초대교회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교사들이 복음전파의 대상자들과 마찬가지로 빈곤에 찌들고 무력한 처지에 함께 했더라면,
선교사들의 메시지는 그나마 들어줄 만한 것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선교사들은 더 잘살았고 더 잘입었고 더 잘 먹었다. 사실
그들은 많은 제국의 하수인들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았다. 기독교는 피식민지가 얌전히 있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아편이라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면 지주 체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은 한번도 지적되지 않았다. 사실, 식민지배 제국들은 지주제로부터 이득을
보았다. 그들은 피식민국 각각의 부와 자연자원을 쥐어짜 그것으로 제1세계를 살찌웠다. 지주들은 제국주의자들의 하수인이었고, 제국주의자들이
"토착민"들과 직접 접촉할 필요가 없도록 해 주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 동포인
지주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지주들이 제국주의 국가들, 기독교 국가들의 비호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피식민지 국가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제 1세계 내에서 목청을 높이기 시작할 즈음에는, 기독교가
외국인과 그들의 "사냥개"의 한패라는 인상이 피식민 국민들에게는 아주 깊숙이 박혀 있었다. 몇몇 선교사들이 깊은 헌신과 희생을 통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으나, 그 영향력은 직접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에 그쳤다. 그들은 강한 토착교회를 세우는데 실패했다. 그러한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는 해외에서 훈련받은 지도자들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그런 사람들은 말 그대로 자신의 본토에서 뿌리가 뽑혀, 자신이 속한
문화에 대해 철저히 무지했다.). 교회의 생활과 예배 양식은 서양의 것이었지, 지역에 고유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민족들이 알아듣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외국어처럼 보였고, 번역된 성경도 일반 서민들의 언어로 쓰인 성경이 가진 본래의 맛을 반영하지
못했다. 지성인들은 식민지 제도 하에서 잘 나가던 지성인들을 위해서 성경을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이 토착민들과 얼마나 다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의 임기를 마친 뒤 풍요로운 제 1세계인 고향으로 돌아갈 때 였다. 본국으로 돌아가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한
선교사들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으나, 그런 경우에도 그들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문제를 순전히 정치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그들은 경제학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지했다.
식민지들이
마침내 독립했을 때, 그 나라들은 이미 거의 황폐화되어 있었다. 국민들은 서로 싸우고 증오와 분노에 가득차 있었다. 경제는 파탄지경이었고 이익이
되는 것은 모두 지주계급이나 구식민지배 강대국에 사는, 보이지 않는 투자가들이었다. 이들 투자자들이 그 나라에 남겨두고 온 개인기업을 통해
여전히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정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많은 신생독립국가가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공산화되었으나,
공산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제 그 나라들은 이슬람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슬람이 무슨 경제 프로그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이슬람을 통해 그 많은 세월, 자신들을 착취하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기독교도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그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는, 교회를 불태우고 기독교인들을 암살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모하메드에 대해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처벌은 죽음이라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는 또다른 측면이 있다. 제국주의 열강들 중에는 많은 유익을 끼친 경우도 없지 않다. 그들은 도로를 닦고, 산업을 유치하고 건강진료를
도입했으며 교육제도를 확립시키고 다소간의 생활수준향상 및 외형적인 "진보"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독립한 순간부터 통치권을 둘러싸고 많은
당파로 나뉘어, 독립 이전에 제국주의자들이 국가경제를 착취하던 방식 그대로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제국주의 세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거나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우는 경력을 거치면서 그 방면에서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탐욕과 권력욕으로 인해
그들의 나라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10-40 창에 있는 나라 중에는 독립 이후로 매년 정권이 바뀐 나라들도 있다. 불행과 가난에 찌들려 건강을
잃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지내거나 아예 거처가 없는 사람들이 직장을 얻을 가능성도 없이 분노와 원한에 사무쳐 살아간다. 그들의
산업, 농장, 관계시설이 내전(內戰)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설교할 수 있는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이 과연 죽으면 가는 저 세상으로서의 구원을 받아들일까? 우리는 지극히 겸손하게 회개에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 선교사들은 한번도 제국주의자들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좋다. 하지만 그들은 기독교인들이고,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그들도 제국주의의 도구이다. 왜냐하면 모든 제국주의자들은 일본인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왜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다른가? 이곳 한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고
독립투쟁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결코 일제 식민지 권력과 동일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일이 세계에서 거의 유래 없는 유일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선교사들을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가장 강력히 비난해 온 것은 중국 공산당이었지만, 정작 중국은 한번도
기독교국가의 지배하에 들어갔던 적은 없다. 기독교권인 영국이 대놓고 아편 무역을 계속하기 위해 중국과 몇 차례의 전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다.
아편무역을 통해 중국이 큰 피해를 입었고 영토 자체는 작지만 상징적 의미가 큰 홍콩을 빼앗긴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전쟁에 패해 마약무역에
항구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후 선교사들이 마약 무역상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아편 매매상들과 "민중의
아편"(기독교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별명) 전도자들 사이에는 무의식적인 공조가 생겨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군벌(軍閥), 대지주, 그리고
일본인들이 중국을 압제했으며, 따라서 그러한 압제자들과 선교사들을 한패거리로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중국 공산당이 선교사들을 추방할 때 즈음에는
이미 아편전쟁에 대한 기억은 거의 잊혀졌으며 열심히 일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자기 희생적인 선교사들이 건강한 교회를 남겨두고 떠났다. 그 교회는
가난한 자들의 교회, 압제받는 자들의 교회였으니, 서양인 선교사들이 물러난 이후 처음 45년 동안 중국교회는 30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 밖에 없다. 교회의 죄악은 우리의 죄악이다. 교회의 실수는 우리의 실수이다. 우리는 그러한 죄악과 실수에 대해
회개해야 하며 우리가 야기한 모든 고통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용서를 구하고, 복음은 가난한 자를 위한 것이며, 압제받는 자, 절름발이,
소경, 노숙자, 고아, 과부, 토지가 없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 이것이 온전히 성취될 것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바로 지금 성령의 코이노니아 안에서
우리가 한 가족이 되며 평생 서로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토지개혁이 시행되기 전이라 해도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가난이 없을 것이다. 서로가 가진 것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고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기적적인 공급의 원천으로부터 무엇이든지 부족한 것을 공급하시는 것이다. 미가서 6장 8절. 공의가 첫째, 자비가 두번째, 기적은 세번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