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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평통 러시아 방문기(2003. 4.2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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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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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평통 러시아 방문기
이강실 목사
일정 : 2003년 4월 23일-27일 일행 : 한상렬목사(단장),
김종무총무, 문대골목사, 이해학목사, 나핵집목사, 이강실목사(총6인) 2003년 4월 23일 15시 5분
비행기를 타다. 아주 작은 비행기여서 덩치가 큰 러시아인들에게는 좁고 불편한 좌석이다. 승무원들이 칼기만큼 친절하지 않지만 그래도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공산주의사회에서는 친절 보다는 정확한 업무처리에 더 비중을 두기 때문일까? 17시
블라디보스톡공항에 도착하다. (19시) 시골 중학교의 건물만한 규모이다. 여권심사를 두차례나 하였으며 업무처리속도가 한국에 비해
느렸다. 성광호목사님이 청년 김연호군과 함께 우리를 마중나왔다. 봉고차와 자가용에 각각 분승해서 이북의 비자문제로 나호드까의
이북영사관을 향해 가다. 2시간정도걸린다고 하니 거기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아침 영사관을 찾아가기로 하다. 24시 10분 나호드까에
도착하다. 길이 어두워져서 거의 4시간이 걸렸다. 가는 도중 잠깐 헤맸는데, 이정표를 발견하고 다시 길을 찾아 왔다. 한목사는 이것을 보고 우리
민족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정표가 있음에도 제대로 보지 않고 헤매는 것이 꼭 우리 민족의 모습과 같다고 했다. 양쪽으로는 숲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아직 새순이 돋아나 있지 않아 을씨년스런 느낌을 주었다. 5-6월이 되면 이 숲을 들어가기가 힘든데. 그것은 ‘크리시’라는
찐드기가 있어서 이것이 살을 파고 들어 혈관을 따라 흐르고 뇌에까지 올라가 죽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산을 드나들며 등산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살기좋은 곳이다. 러시아는 산에 계곡같은 것도 없고 등산개념이 별로 없다고 한다. 24시 30분 미리 연락된
나호드까장로교회민승자사모님과 함께 “슈완유완”중국인 호텔로 향하다. 한국돈으로 거의 4만원을 주었음에도 시설이 낙후되어 있고, 냄새가 지독했다.
1시 저녁식사를 하다. 대부분의 가게는 오후 5시 이전에 거의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러나 밤늦도록 하는 식당이 있어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1층은 빠요 2층이 식당이다. 고기 완자탕은 너무 짜고 만두는 피가 너무 두껍고 내용물과 분리되어 수제비를 먹는 기분이다. 그러나 배가
고파서 먹었다. 민승자 사모님이 늦동이 10살 아들을 데리고 나와서 나핵집목사님의 늦동이 지환이 이야기, 그리고 이해학, 문대골목사님의
손주들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이해학목사님의 큰 딸 아들이 말썽장이인데 이번에 반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견발표때 “자기를
반장시켜주면 까불지 않고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닮아 정치인이 될 싹이 벌써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3시 잠자리에 들다. 4월 24일
목요일 8시 30분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다. 성목사님이
오셔서 자신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다. 신사동교회에서 전도사, 동광교회에서 부목을 지내셨으며 찬양지도에 특별한 달란트를 갖고
계신분이다. 성풍회에서 활동을 많이 하셨다. 3년전 우즈베키스탄의 선교사로 갔다가 인파선암을 발견하여 3개월 머물고 돌아와 1년 치료를
받고 완치된 다음 기도 가운데 이곳의 사명을 받고 6개월 전에 오셔서 과학기술대학교의 한국어과 교수로 일하고 계신다. 갈릴리해변과 비슷한 이
곳의 해변가에 교회개척을 할 꿈을 갖고 계시다. 놀라운 것은 23년 전 한목사가 나의 언니 문제로 성광호목사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성목사님이 기억하고 말을 하자 한목사도 그때서야 알아보았다. 23년전의 인연이 이렇게 다시 이어졌다. 같이 동행하면서
봉고운전을 하는 청년 김연호(kkyyhho@hanmail.net/ H.P
57-80-81)님은 6년전에 러시아에 와서 블라디보스톡대학에서 영문학을 하고 이제 직장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봉고운전은 물론 러시아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서 아주 성실하게 심부름을 해주고 뒤치다꺼리를 해서 우리 모두 고마워 했다. 한국이 애인이 있다고 하니 문목사님이 그 애인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으면 메신저로 전해주겠다고 자천하셨다. 9시 20분 나호드까장로교회에 오다 이 교회건물은 새로 지은 것으로 이
지역에서는 잘 지어진 건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목사님 성함은 박광배목사님이시다. 이 목사님은 12년전에 러시아로 온 최초의 목사로서 러시아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교인은 거의 러시아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려인이 10가정 된다. 교인이 250명가량되는, 이 지역에서는
아주 큰 교회에 속한다. 한국교회처럼 새벽기도, 수요예배, 구역예배가 다 있다. 나핵집목사님 안내로 예배를 드렸다. 에베소서 2장
14절 말씀을 가지고 서로 다른 것을 품고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러시아와 한국, 남한과 이북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아침식사를 한 것을 모르고 사모님이 아침식사를 준비하셨다. 러시아인 교인이 와서 준비해주었다. 이 여자는 중장기 기사였으며 장군(중장)인 아들을
두고 있는 60대 여성이었다. 라면에 밥에 지필(설탕과 계란으로 만든 물렁물렁한 빵, 아주 맛있었다. )을 준비하셨다. 이미 호텔에서
배부르게 아침을 먹었지만 준비한 정성 때문에 또 다시 먹었다. 모두 지필이 맛있다고 했다. 10시 30분 이북영사관에 도착하다.
그러나 영사는 벌써 블라디보스톡공항으로 떠났다고 한다. 오늘 평양비행기가 뜨는 날이라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공항에 있는 사무소에서
비자도장을 찍는다는 것이다. 허탈했지만 영사관을 방문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영사관 안은 들어갈 수 없어서 대문밖에서 사람만 만날 수
있었다. 38선을 넘는 기분으로 일부러 영사관의 경계를 넘었다 나오셨다는 문목사님의 말씀이 비극적인 한국분단의 현실을 다시한번 절감하게 한다.
영사관이 블라디보스톡공항 가까운 곳에 있지 못한 이유는 3년 전까지만 해도 블라디보스톡에 극동사령부가 있어서 외국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3시 블라디보스톡공항에 도착하다. 이북영사관사무실은 고려항공사과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다. 아주
작고 초라한 사무실이다. 공항에 나가 있는 영사를 만났지만 이미 평양에서 우리 일행에 대한 입국을 불허한다는 메시지가 오늘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실망했다. 기장총회사무실에도 이미 팩스가 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른 방문팀의 일정은 모두 취소하고 우리 일행만 특별히 러시아를
통해서 오라고 했기 때문에 크게 기대를 했는데 결국 사스 때문에 보건당국의 완강한 저지로 방문의 계획은 좌절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영사가
“방문은 다시 할 수 있지만 목숨은 한 번 잃으면 끝이다”고 한 말 때문에 더 이상 우길 수 없었다. 우리를 초청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많은 애를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스문제가 안정되면 신속하게 우선적으로 초청하겠다는 팩스의 내용에 조금 마음이 누그러진다. 비록
러시아이지만 이북사람을 이렇게 만나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모란봉일중학교에서 미선이 효순이를 명예학생으로 임명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지금 이북은 온갖 꽃이 만발해서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성목사님 댁에서 식사하기로 하고 블라디보스톡시내를 향해가다
약 40분내지 1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점심을 먹지 않아 모두들 배가 고팠지만 그런 말을 할 만큼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16시30분 목사님 댁 가는 길에 “3.1운동기념탑”을 들렀다. 1999년 3.1운동 80주년을 기념하여 해외한민족연구소가 선열의 넋을
기리고 러시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하며 이 기념탑을 세웠다. 17시 성목사님의 댁에 도착해서 점심겸 저녁을 먹다.
성목사님의 아파트는 새로 지은지 얼마 안된 좋은 아파트에 속한다고 한다. 평수는 25평정도 되어 보이며 유럽식으로 지어져 있다.
사모님께서 한국명덕게와 비슷한, 그러나 크기가 2-3배는 되어보이는 게를 삶아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식사후 모여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상의했다. 여기에 머물러 있다가 일요일 비행기로 한국에 가기로 했다. 20시 해변가를 거닐다. 넓은 바다를 보니 피곤이
씻기는 듯하다. 한복을 챙겨입은 문목사님, 한목사님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다. 많은 남녀들이 나와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러시아여자들은 보편적으로 이쁘고 늘씬하다. 북방미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얗고 좋은 피부에 늘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 비해 뚱뚱한
사람들이 적다. 그리고 여자들은 거의 멋쟁이처럼 꾸미고 다니며 뛰어난 패션감각을 가지고 있다. 몸에 달라붙은 나팔바지식 청바지가 아니면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이 유행인 것 같다. 돈을 몇 년 모아서 몇백만원하는 밍크코트를 사기도 한다. 겨울에는 춥고 바람이 세기 때문이다. 여성에
비해 남성들은 별로 멋을 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여기는 이혼율이 90%이다. 능력없는 남성들, 술좋아하는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이혼당하기 쉽다. 여기 남자들은 술을 좋아한다. 알코올중독도 많다고 한다. 여자들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남자들은 게으른 편이라고 한다.
13시 블라디보스톡호텔에 묵다. 여러 호텔을 거의 한시간가량 돌다가 첫 번째 호텔로 정하다. 어제 머물렀던 중국인 호텔에 비하면
가격은 만오천원정도 비싸지만 모든 것이 훨씬 낫다. 무엇보다 냄새가 안나서 좋다. 사우나시설이 되어 있어서 예약을 했지만 이전 일행이 시간을
연장한 바람에 사우나를 하지 못하다. 문목사님, 나목사님, 그리고 나와 한목사님은 약간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4층의 레스토랑에 갔다.
메뉴를 보니 미역국과 라면이 있어서 라면을 시켰는데 한국사람 뺨치게 너구리라면을 맛있게 끊여와서 잘 먹었다. 칵테일도 한잔씩 시켰는데, 웨이터가
각사람마다 다른 종류를 온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와서 우리를 즐겁게 했다. 특히 한목사님 것은 독한 보디카를 많이 넣는지 술위에 불까지 부치는
이벤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4월 25일
금요일 9시 아침식사와 결혼기념선물이야기 남자들은 일찍
일어나 사우나를 하고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에 나왔다. 오므렛, 핫도그, 차, 우유스낵이 메뉴이다. 이해학목사님이 사모님께
결혼기념선물로 은반지를 사주었다가 안사준 것보다 못한 결과를 빚어 몇배로 만회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물을 지펴 문목사님이 결혼
15주년째 금반지, 금목걸이등에다 큰절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터져나와 즐거운 아침식사를 하였다. 사모님들 고생만 시켜드린 이 두 목사님은 쫓겨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고 산다며 은근히 사모님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셨다. 10시 40분 블라디보스톡관광을 시작하다.
공예품가게를 들러서 역전에서 내일 갔다올 고려인 정착촌 우스리스크 기차표를 끊었다. 러시아 끝의 기차길 옆에 서서 바로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하얼삔으로 떠난 안중근의사를 떠올렸다. 여기에서 모스크바는 9288킬로미터이다. 역전 광장을 나오니 1917-22년 제정러시아시대때
죽어간 무명용사들을 위한 기념탑이 있었다. 이해학목사님은 줄곧 비데오를 갖고 다니시면서 이곳 저곳을 열심히 찍고 다니셔서 어느 순간 사라져
우리로하여금 찾게 만든 적이 있으실 정도다. 나핵집목사님은 순간현상되는 사진기를 가지고 오셔서 결정적인 순간에 찍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현대에서 지은 현대호텔에 가서 일요일에 떠날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블라디에서는 제일 비싼 호텔이지만 사람들이 별로 없어
적자운영이라고 한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외국귀빈들이나 부자들만 머물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 비하면 너무나 허술한 호텔이다. 로비에서 부활절
빵을 팔고 있다. 12시30분 잠수함구경을 갔다. 전쟁때 사용했던 잠수함을 교육용으로 진열해놓았다. 이라크전쟁으로 인해 전쟁무기를 본다는
것이 싫었지만 교육적인 의미에서 갔다. 46명까지 탈 수 있고 미사일장전기가 4개 달려 있는 잠수함이다. 영어안내판이 없어서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었다. 이 나라가 아직 외국관광객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다. 그만큼 관광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 전체가
오래된 건물이 많아 허름하지만 이 건물을 잘 보수만 한다면 멋있는 건물들이 많아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다고 본다. 유럽에 온 느낌을 받는다.
마침 중고등학생들이 군복을 맞춰입고 이곳에 견학을 왔다. 한목사님을 보더니 한복에 수염이 인상적이었던지 학생들이 사진을 찍자고
달라붙었다. 어느나라든 청소년들은 귀엽고 발랄하다. 마침 이곳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었다. 이것은 1940-45년에 죽은 군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비록 이들은 죽었으나 이들의 충혼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 같다. 벽의 부조에는 병사들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13시 러시아정통음식을 점심으로 먹다. 식당의 이름은 ‘빠빠라치’, 포키나
3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포키나 거리는 해변으로 이어져 있으며 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로 지정되어 열심히 단장되고 있었다. 마침
방송국에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 거리에 대한 느낌이 어떠냐고 묻고 있었는데 우리도 붙잡혀 총무님이 ‘전통적인 색채를 보존하고 있어
좋다’고 대답하셨다. 유럽의 거리를 걷는 느낌이 들 정도로 러시아의 거리는 유럽과 흡사하다. 음식점에서 각각 돼지고기, 오징어고기요리를
시켰는데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14시 러시아정교회를 방문하다. 마침 성금요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서서
예배에 참여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성상에 입을 맞추는 예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4-5명 밖에 안되는 성가대원들의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더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나왔다. 나는 선물코너에서 가는 초를 샀다. 가는 촛대가 있지만 초가 없어서 쓰지 못했는데 이제 그 촛대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를 싸준 종이를 꼭 태워서 버리라고 부탁을 할 정도로 이들은 성물에 대해서 매우 엄숙하다. 15시 이그나스백화점에
들르다. 아무도 기념품을 사지 못해 고민하다. 특히 사모님들게 잘 보여야 할 두목사님은 사모님 선물을 고르느라고 고심하지만, 실제로 사줄
만한 물건이 거의 없다. 백화점에 물건도 별로 없고 사람도 없다. 나는 전통의상을 입은 남녀 인형을 샀다. 세계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을
모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세계의 날을 정해 각자 교인들이 알고 있거나 갖고 있는 세계의 지식이나 관련물건들을 가지고 세계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백화점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이곳을 방문해 도자기를
하나 선물한 것이 입구에 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18시 재래시장에 들르다. 주로 중국사람, 베트남사람, 고려인이 장사하고 있는 곳으로
물건의 품질은 별로 좋지 않다. 꿀이 싸다는 성목사님의 말씀에 꿀을 두병이나 샀다. 문대골목사님은 털모자를, 이해학목사님은 베레모를 샀는데
두분이 기가막히게 잘 어울렸다. 19시 호텔로 돌아와 4층에 가서 미역국,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문목사님, 나목사님이
기거하시는 방에서 뒷풀이를 하며 이 이북방문의 모든 계획을 총화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기장이 통일운동이나 남북교류에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이며,
이북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시켜나가야 할 것이며, 앞으로 다시 초청되엇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전반적인 이야기를 토론까지 하며 아주 깊이
있게 나누었다. 통일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전략들을 교환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통일에 대한 생각을 넓히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새벽 1시였다. 4월
26일 토요일 9시 19분 우수리스크 가는 열차를 타고 고려인 정착촌을 방문하러 떠나다. 우리가 탄 열차는 여러군데를
쉬는 완행열차이다. 일반인들을 만나고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대화를 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기차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러시아아이스크림으로 슈퍼에서는 0.5루불이었는데 여기에서는 5루블을 받는다.
한목사님이 화장실을 다녀오더만 어떤 고려인 할아버지 한분이 따라왔다. 한복을 보고 한국분인줄 알고 이야기를 할려고 따라오셨다는 것이다.
이분은 박정율님으로서 연세가 78세이다. 독학으로 중국어, 러시아어, 일어를 통달하여 통역을 10년 하셨고 지금은 채소농사를 하고 계신다.
정규학교를 나오지 못해 학구열이 대단해서 자녀들을 대학까지 가르치기 위해 대학나오면 차사주고 결혼비용을 댄다고 했지만 막내아들은 결혼한 바람에
대학을 중퇴하자 아무것도 안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큰 아들은 러시아여자와 결혼해서 또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민족의식이
대단하다. 앞으로의 꿈은 자신의 집에 학교를 세워 고려인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란다. 그래서 한국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구하고자 했다.
그분은 잘먹지 못하고 잘 입지 못하는 것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조선사람을 만나도 조선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불쌍하다고 하셨다. 그분은 공부를
해야 머리가 영민해지고 그래야 인생길이 환히 보인다는 말을 강조하셨다. 고향이 이북인데 이북은 다녀오지 못하고 남한만 3일 다녀왔다고 한다.
남한에 사스로 의심되는 환자가 10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하자 장난끼가 많은 김총무님이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꺼내 쓰자 이것을
본 뒷좌석의 러시아 청년 4명이 서로 옆구리를 꾹꾹 치르면서 벌떡 일어나 다른 기차칸으로 급히 도망가는 것을 보고 너무 우스웠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이 다른 칸은 빽빽이 밀렸는데 왜 이 기차칸은 자리가 텅텅비냐고 하자 아마 이 기차칸에 사스환자가 있다는 소문이 기차가 쫙 퍼진 것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웃었다. 12시40분 우스리스크에 도착하다. 이곳에 선교사로 2년 전에 오신 안병근, 지경자목사님(전화:
001-7-2341-2-50-35)이 우리를 마중나왔다. 1시에서 3시 사이에 고려인정착촌인 우정마을을 다녀간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점심먹을
사이도 없이 바로 우정마을로 향했다. 도중에 농산물도매시장에 들러 사과 10박스를 사고 마을에 도착하니 14시가 넘었다. 지경자목사님은 대학교의
한국어과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남편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어과교수로 잇었던 한국인목사 2명이 여자문제로 물의를 일으켜서 한국인 목사에
대한 이미지가 안좋다고 했다. 그리고 이 중 한 목사가 지금 우정마을의 한국인대표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14시 고려인정착촌 우정마을에
도착하다. 스탈린 시대에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고 먹고 살 것이 없어서 다시 돌아와서 아직 비자도 없고 일거리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비자가 없어서 아이들 학교입학도 힘들다고 한다. 이 정착촌은 2000년 러시아가 땅을 제공했고 한국에서 건물을 지었는데, 업자가 몇백억을
떼어먹고 도망가는 바람에 집안의 화장실이 공간만 있지 내부시설이 되어 있지 않으며 물도 들어오지 못하고 난방장치도 없어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은 사람이 지금 입주해서 살고있는 사람에게 소유권을 넘겨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어서 이 집에서 언제 쫒겨날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살고 있다. 건물의 겉모양과 틀은 아주 잘 지어진 집인데 너무 아까왔다. 기장총회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색해서 이 분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지 선교사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16시 고려인이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에서 점심겸 저녁을 먹었다. 요리 여섯 개가 듬뿍듬뿍 담겨 나와서
다 먹지 못할 정도였다. 마지막에 나온 된장국이 일품이어서 입가심과 속풀이를 거뜬하게 했다. 18시 우수리스크에서 버스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다. 21시 호텔 4층에서 다시 라면과 미역국을 먹고 다시 문대골목사님 방에 모여서 총정리를 한 다음 다음날 아침
부활절예배의 말씀을 내가 인도하기로 하다. 4월 27일 일요일 7시30분
부활절아침예배를 드리다. 마르코복음 8장 12절과 34-35절을 통해 통일에 대한 절박한 입장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껴안으면서 부족한
모습이대로이지만 통일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주님을 따라가자는 내용을 전달했다. 나핵집목사님 사회와 김종무총무님 기도와 문대골목사님축도로 예배를
드렸다. 10시30분 블라디보스톡공항에 도착하다. 성목사님과는 호텔에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부활절예배라서 성가대지휘를
해아하기 때문에 교회에 가야 했다. 3박4일간 친절하고 자상하게 우리를 안내해준 성목사님께 감사하며 그 분의 건강을 기원한다. 오는 도중
차에 기름을 잘못넣어 봉고차가 고장이 나서 택시를 잡아티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이 아주 작아 면세점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을 정도이다.
12시30분 비행기가 한국을 향해 출발하다. 비행기 속에서 옆에 앉으신 문목사님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귀하신 분들을 만나서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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