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안내 예배 담임목사 회의와위원회 교회학교 선교기관 커뮤니티
 
 

 
Untitled Document
연변의 용정 및 명동촌 등 기장 역사 유적지 답사(서굉일_기장총회 2001년 3월 회보) 주민교회 (juminch)
540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2001년 3월 회보> 


연변의 용정 및 명동촌 등 기장 역사 유적지
답사
- 기장 통일운동과 북한선교와 관련하여 -



서굉일 목사<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북간도 명동촌과 용정은 근대문화의 발상지이며, 만주항일운동의 진원지이며,
민족해방의 희망을 전파하는 신앙공동체였습니다. 이제 21세기 기장 교단은 민족사의 기토요, 일제하 우리 신앙의 뿌리가 되는 이 곳에
민족통일운동의 센터를 지어, 유서 깊은 유적지에서 민족신앙, 역사신앙을 답사하면서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북한선교, 통일선교, 민족 문화선교 등
민족사의 미래와 한국교회의 미래의 꿈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
1월 29일부터 2월 1일까지 교단의 총무 김종무 목사와 이해학 평통위원장과 함께 중국의 연길, 용정 및 명동촌 등의 역사 유적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보고서를 다음 세 가지,
즉 첫째, 한국기독교장로회의
통일 운동과정
둘째, 북한선교의 대책
셋째, 유적지와 기장과의 관련성 등을 중심으로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1. 한국기독교장로회의 통일 운동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한국 교회 중에서 한반도 통일문제를 선교적 과제로 삼은 맨 처음의 교단입니다.
1983년(제68회 총회) 총회 산하에 통일 문제 연구위원회를 개설하였습니다.

새 역사 30년을 기념하여 <한국기독교장로회 신앙고백서>를 발표하였는데, 이 가운데 민족통일문제를 우선적인 선교과제로
천명하였습니다. 새 역사 선교과제로서 민족통일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선언은 내외로부터 민족적 교회이며, 예언자적 교회다운 모습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각 노회마다 통일문제 연구위원회를 두었고, 통일문제를 노회 차원에서 접근하였습니다. 1984년 광주민중항쟁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경직된 사회상황에서 통일문제협의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기장의 통일문제협의회의 강행은 민간통일운동을 여는 물꼬가 되었습니다. 교단은 평화통일 문제
연구위원회(약칭:평통위)로 그 명칭을 발전 변경한 후, 평화통일 의식을 일깨우고 그 저변화를 위하여 통일문제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전국 각 노회는 노회 산하 평통위를 활발히 가동시켰습니다.
평화통일 의식의 저변화 작업은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모습을 띠면서 예장 및 미국 장로교회 대표들과 함께, 1986년 <한반도 통일문제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기장 평통위는 <분단의 재인식(1차),
분단사회의 실상(2차), 분단 극복을 위한 교회의 자세(3차)>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 차례 연속 연구협의회를 열어 분단상황에 대한
사회적·교회적 인식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총회 <회보>에는 평화통일 관련 자료를 게재하였고, 협의회의 내용을 정리한 평화통일자료집을
발간하여 전국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배부하였습니다.

<분단의 원인과
민족공동체의 실상>이란 제목의 자료집 제1집은 전국의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평화통일 문제에 대한 새롭고,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통일문제를 교회의 언어와 논리로서 정리하였고, 교회가 견지해온 반공 주장과 그 활동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토의하였습니다. 교회가 통일운동을
전개하는 데 장애가 되는 ‘반공 신앙’의 정체를 규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교회적 평화통일 운동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기장 평통위의 활동 중 주목되는 점은 ‘민’과 ‘민’차원의 교류를 제안함으로서 최초로 남과
북간에 ‘민’과 ‘민’의 만남을 가시화하는 첫 걸음이 되었습니다. 기장 평통위의 도전적 통일 논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가 1988년
<민족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 선언>을 채택하는 데 커다란 힘과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기장 평통위는 수차례의 연구협의회를
개최하며 N.C.C의 통일 선언을 확산시키는 데 전념하였습니다.

각 노회별
평통위 지역협의회를 지원하여 전국적 차원에서 1천여명의 목회자와 신도들에게 통일선언의 의미를 교육하였으며, “세계 기독교 한반도 평화협의회”에
교단대표 50여명을 대거 참가 시켰고, <평화 통일 교육자료>를 별도로 발간하였습니다.

N.C.C 통일 선언에 대한 기장쪽의 실천안으로서 <평화통일에 대한 우리의 입장(3)>을
내어놓았습니다. 이 문서에는 1995년 통일희년을 맞이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제시하였습니다. 전국 10개 지역에서 “평화통일 지역 신도
대회”를 개최하여 평신도들로 하여금 평화통일운동에 동참케 하였습니다. 또 평통위는 ‘북한의 교회와 사회 바로 알기’와 같은 평화통일 강의 시안을
제작하여 각 노회에 배포하였고, 이 자료는 신도대회 강사와 지도자들을 위한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신도대회는 전국 각 지역에서 총 2,00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북한 교회와 교류·협력을 위한 헌금운동이
이루어졌고, 8·15직전 주일 평화통일 기념 기도주일에는 북한 지역 교회 개척을 위한 특별 헌금을 시행하였습니다.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을
계기로 기장 평통위는 활기를 띠면서 통일문제로 구속된 이들을 적극 지원하였고, 반통일적 정부를 통일운동에 적극 매진하는 정부로 바꾸는데 지렛대
역할을 하였으며, 민족 통일을 시대 정신과 생명운동으로 천명하였습니다.

신앙적
양심으로 목회와 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홍근수 목사의 구속사건으로 옥중투쟁을 지원하는 통일강연회와 통일 산상 기도회 등을 특별 개최하기도
하였습니다. 평통위는 남북헌법을 비교하는 일, 남북 기본합의서 해설집 발간, 통일문제 세미나 개최, 평화통일 국토순례행사로서 금강산 방문,
N.C.C사업으로 진행된 8·15기념 남북 인간 띠잇기 행사 참여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주관하여왔습니다.

통일문제 연구모임은 기장이 한국교회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모임이며, 기장은 N.C.C에도 전문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하여 평화통일 위원과 기구가 임명되고 조직되었습니다.

2.북한선교의
대책

민족의 통일문제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겨졌습니다. 만약 우리 민족이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하지 않으면 영구적으로 통일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통일이 되는 기간을 20년에서 30년 정도로
예측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그 동안에 통일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대책과 또한 통일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가지 많은 일들, 또 통일 후에 나타날
혼란을 대비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교회 전체가 내부적으로는 범교단적으로 북한선교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범교회적으로
공감하고, 교단 내에 서로 다른 통일 논의와 북한선교를 통합시키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북한선교의 방법, 준비, 주체 그리고 목표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보수교회와
지도자들은 자유 십자군적 의식으로 북한의 신도들과 북한교회 재건을 위해 기도하고 북한 선교단체를 조직한다고 합니다. 북한의 복음화에 관심을 갖고
북한에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한 간섭을 내려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회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또 북한의 어용기독교 단체와 만날
것이 아니라 ‘지하교회’와 접촉 교류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월드비전과
같은 기독교계 NGO는 북한에 수경재배로 씨 감자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로 북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통일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노력은 온갖 모양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즉,

①
통일문제 강연회, 심포지움, 세미나 개최
② 연구활동의전개
③ 사랑의 쌀 모으는 일, 북한 국수틀 공장을 세워주는 일, 수경재배를
통한 씨감자심기, 옥수수재배, 등등 북한동포의구제
④ 탈북자 돕기, 농장건설.
⑤ 금강산 방문
⑥ 제3국을 통하여 북한을
방문하는 일
⑦ 여러가지 물질적 도움을 주는 일 등등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장의 선언문에서 주장하였듯이, 통일은 정치권력자나 당국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해 6·15선언 이후
가시적인 통일운동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상의 여러 정황을 고려하여 지금까지 기장이 한국교회의 평화통일운동을 선도해 온 것처럼 이제 그
구체적 방법과 목표를 세우고 그 준비와 주체에 대해 기장의 평통위도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때입니다.

독일통일은 정부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교회, 민중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입니다. 기장도
성큼다가온 통일맞이 준비를 구체화 하여야 합니다. 기장 안의 개교회가 북한선교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지만 그 진행은 교단차원으로 단일화하여야
합니다.

북한에는 조선그리스도교 연맹이라는 국가교회 한 가지만 있는데 우리는
수많은 교파가 있습니다. 교회가 독자적으로 각기 북한선교를 하고자 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북한교회가 정치적으로 독립되고 그
종교활동의 자유가 보장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북한교회의 개방화와 민주화 시기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관 주도형의 통일운동이 급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통일운동에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십대의 청소년들은 우리가 왜 물질적 피해를 보면서 통일을 해야 하느냐 묻습니다. 지금의 통일문제,
북한문제는 교단 차원에서 중지와 힘을 모아 대처해야 합니다. 각 교회가 개별적 선교나 북한 사업을 벌일 때가 아닙니다. 통일의 시기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① 역사의식을 바로하고
② 민족통일에 대한 경륜을
나누고
③ 민족정신을 일으켜 온 국민을 단결케 하고
④ 동족간에 하나되기 위해서는 적대와 증오살상 등 그간의 저지른 과거사를 극복하고
화해해야 하며
⑤ 민족분단과 동족상잔 전쟁에 대한 철두철미한 회개와
⑥ 서로간의 이데올로기의 존중과 남북 상호간에 상대편의 이념을
버릴 것이 아니라 새 시대를 위해 그 가치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평등의 가치와 자유의 가치는 모두가 중요합니다.
⑦ 복음은 민족구원의
복음이어야 합니다. 또한 북한에 자파교회를 세우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민족의 일체성, 통일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교회 재건을 북한의 기독교인들의 손으로 이룩되도록 하고 우리는 후원하면 됩니다.
⑧ 언젠가는 북한이 지하교인들과도 접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의 여러 문제들은 우리 자신에 해당되는 것도 있고, 정치적
변화가 와야 되는 것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내외 정세변화에 대응하여 기장도 통일문제에 새로운 계기를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떻게 하면 분단된 조국과 민족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서로 위해주는 마음으로 화해 협력할 수 있는가에 달렸습니다. 지금 상황은 궁극적인
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과도기입니다. 그 중간에 교회는 남북에서 각자의 사회에 자유, 민주, 정의, 평등, 사랑과 인정이 넘치도록 변혁시켜
가는 데 혼신의 힘을 바쳐야 하고, 이 일의 일환으로 북한선교 대책을 논의할 수 있는 평화통일 센타 건립이
요청됩니다.

3. 용정.명동촌의 유적과 한기장과의
관련

정치가 할 수 있는 통일이 국토통일이라면, 민족의 통일과 역사의 통일은
정신적·문화적 접근만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민의 통일이요, 종교영역에 속합니다. 기장 총회는 민중을 대표하여 남북민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 장소로서 북간도 용정과 명동촌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연변이라고 부르는 곳은 두만강 700리 물줄기와 함께 북한과
접경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남쪽도 북쪽도 아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아니한 조선족이라 불리는 일제 강점기에 이주한 한인들의 후예가 살고
있습니다. 이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는 만주 또는 북간도로 불렀습니다. 북간도는 우리 민족 고대시대의 나라인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가 섰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사는 이주한인들은 한민족(韓民族)의 고토(故土, 옛땅)으로 인식해왔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민족사 속으로 들어와야 할 땅입니다. 이 곳에 합방
이후 함경도 지역에서 이주해 간 변경민들이 새 민족공동체를 세우고, 무장독립전쟁을 준비하면서 교육구국운동, 사회결사운동 등을 일으켰습니다. 이
곳에 기독교민족운동가 이동휘, 신민회의 파송을 받은 전도인 정재면, 카나다 선교부의 구례선, 스캇, 박걸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전했습니다. 그들의
기독교는 민족구원, 사회구원의 기독교였습니다. 북간도 명동촌은 “나라를 독립시킨다”는 의미의 명동(明東, 동쪽을 밝힌다)이라는 이름을 갖춘
선각자들이 망명하였는데, 이들은 기독교를 수용하였고, 기독교를 바탕으로 민족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명동촌에는 명동교회, 명동학교가 세워졌는데,
이 교회와 학교는 하나님께 민족의 해방을 신앙고백으로 기도하며 일제에 저항한 세력이었습니다. 북간도 전역에는 이들의 전도로 백여 곳에 교회와
학교가 섰고 후에는 청산리대첩과 같은 무장독립전쟁을 이끌어 냈습니다.

1910년대는 명동촌, 명동학교, 명동교회는 독립전쟁의 기지였고 사관 양성소였으며, 기독교 신앙으로 태어난 새 민족 공동체였습니다.
우리 기장에 많은 인물들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기장의 사상적 연원으로 명동촌은 그 후에도 한국 기독교 정신에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명동교회와 명동학교의 기독교 민족주의 정신은 용정으로 옮겨졌습니다. 카나다 선교부는 북간도 용정에 은진 중학, 명신
여학교, 제창병원, 용정 중앙교회, 용정 동산교회를 세우는 데 크게 협력하였는데, 북간도의 기독교 민족운동가, 이주한인사회를 이끈 민족
민중지도자, 그리고 이주 한인들 등 이 세 세력이 합하여져서 우리 노래 <선구자>에 나오는 용정은 일제에 저항하는 기독교 공동체로
성장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민족해방의 독립의 뜻을 상실하고 있을 때,
북간도 명동촌과 용정 등지의 기독교 세력들은 성경에 의지하여 일제의 멸망을 확신하였습니다.

북간도 명동촌과 용정은 근대문화의 발상지이며, 만주항일운동의 진원지이며, 민족해방의 희망을 전파하는 신앙공동체였습니다. 기장을
시작한 송창근 목사는 이 곳에 기독교를 전파한 전도사 이동휘의 비서로 명동중학과 소영자 광성중학을 다녔고, 김재준 목사는 은진학교의 성경교사로서
많은 신앙인과 목회자를 키웠습니다. 북간도 명동촌에 기독교를 전도한 정재면 목사는 정대위 한신대학교 총장의 부친으로, 해방 후에는 기장
송파교회를 세운 분이십니다. 기장교단의 많은 인물들이 은진, 명동출신이며, 북간도 기독교사상에 영향 받은 바 큽니다. 무엇보다도 기장과 동역한
카나다 선교부는 이 곳에 선교책임을 담당하였고 그들의 자유주의신학, 진보신학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장의 한 뿌리로서 북간도 용정과 명동촌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들은 민족선교의 과제로서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신앙을 통해 전개하면서 교육운동, 교회운동을 함께 했습니다. 이제 21세기 기장 교단은 민족사의 고토요, 일제하 우리 신앙의
뿌리가 되는 이 곳에 민족통일운동의 센터를 지어, 유서 깊은 유적지에서 민족신앙, 역사신앙을 답사하면서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북한선교,
통일선교, 민족 문화선교 등 민족사의 미래와 한국교회의 미래의 꿈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명동촌은 회령과 삼합에서 오랑케령을 넘어 70리 거리에 있으며,그 동리의 크기는 동서가 오리요, 남북이 십리가 됩니다. 명동교회에는
윤동주의 외할아버지가 되시는 김약연 목사의 기념비가 서 있고, 그 이웃 장재촌에는 통일운동의 선구자 문익환 목사가 태어난 생가 터가 있습니다.
이 마을의 입구에는 선 바위가 있습니다. 1909년 안중근 의사는 이 곳에 와서 민족의 원수인 이등박문을 죽이고자 사격연습을 하였습니다.
국내에서 북간도로 망명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동리를 지나쳐야 했는데, 명동교회 목사 규암 김약연은 이주한인 사회의 대통령으로 칭송되었습니다. 이
유서 깊은 유적지에 기장의 통일 센터를 세웠으면하는 바람을 서원하면서 답사기를 마칩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2001년 3월 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