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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학 목사님에 대한 한겨레 기사(2005.10.21)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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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5. 10월
21일

긴급조치-변정수 전 헌법재판관의
고백

‘법 아닌 법’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야 했던 난, 비겁한 기회주의자였다

“긴급조치
9호는 반민주적이고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악법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법을 적용하여 형벌을 선고한다는 것은 양심있는 판사로서 차마 못할
일이었다.”

변정수 전 헌법재판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법 아닌 법’을 적용해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처벌해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다.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 규정된 것이다. 유신헌법 53조는 ‘대통령은 국가안보나 공공의 안녕이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을
경우 헌법에 규정돼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발동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는 개헌을 논의하는 것조차 긴급조치
위반으로 처벌하는, 입헌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긴급조치 코미디 시리즈’로 이어졌다.

긴급조치 1호는 1974년 1월8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비방, 개폐하자는 주장이나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이를 권유, 선전하거나 보도, 출판의 방법으로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지하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이를
위반하는 사람은 법관의 영장 없이 구속할 수 있고 15년 이하의 중형을 선고할 수 있게 했다. 국민의 신체와 언론의 자유를 송두리째 부정한
것이다.

75년 5월13일 발동된 긴급조치 9호는 △학교장의 사전허가 없는
모든 집회나 시위 △집회·시위 또는 언론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또는 개폐를 주장하거나 이를 보도하는 행위, △그리고 긴급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까지 금지시켜 억압의 수준을 한껏 높였다. 유신헌법은 또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못박아 혹시 있을지 모를
사법적 논란마저 봉쇄했다.

변 전
재판관은 공개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비판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잡혀온 이해학 목사 사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무시무시한
분위기에서 구속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자기 양심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종교인 또는 지식인으로서 순교자적인 사명의식과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그에 비해 내심 그런 분들을 존경하면서도 독재자의 앞잡이가 되어 형벌을 선고해야하는 나 자신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기회주의자요 비겁자임에 틀림없는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75년 야당의 반대에도 날치기 통과됐다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등에게 적용된 뒤 88년 폐지된 국가모독죄는 긴급조치와 쌍벽을
이루는 ‘비판금지법’이었다. 긴급조치가 국내의 비판을 막으려는 것이었다면, 외국에서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을 모욕·비방할 때 7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한 국가모독죄는 대외적 비판을 막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이런 ‘법 아닌
법’이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던 시기에 판사로 근무했던 한 변호사는 “유신이 단행돼 아예 법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재판을 안 할 수도 없었고
판사들이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며 “그때 뭘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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