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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돕는 푼돈의 힘_주민신협(한겨레 2005. 7. 19)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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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14년 02월 25일 00시 00분 00초

서로 돕는 푼돈의 힘


성남 주민신협 4만 7000원이 500억으로

“집 쫓겨난 주민 돕다”
47명이 1000원씩 모아 1979년 첫발 내디뎌
퇴출위기도 여러번
넘겼다
조합원도 1만3천명으로 늘고 지소도 2개 열었다
자산 500억 돌파 계기 올해 제2의 창립의 해로

1979년 성남 주민교회에 다니던 사람 47명이 천원씩 4만7천원을 모아 주민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05년. 그 돈이 500억원으로 불었다. 조합원 수도 어른 1만1천여명과 학생 2천여명. 1100여개 전국 신용협동조합 가운데
100위 안에 드는 규모다.

주민교회의 신협은 한 신자의 불행에서 시작됐다. 박현내(72·여)씨는 5남매와 단칸 월세방에 살다 그해 겨울
방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나앉게 됐다. 주민교회를 세운 이해학 목사는 박씨 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처지의 많은 교인들을 돕기 위해 신협을
만들고 고리채 안 쓰기와 월세를 전세로 바꾸기 운동을 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신분녀(67·여)씨는 “신협이 없었으면 지금도 월세방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81년 간암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7남매를 데리고 성남으로 올라와 날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하루에 버는 돈은 2, 3천 원으로 한달 꼬박 일해도 8,
9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월세 2만 원을 내고 나면 아이들 학비는 물론 생활비도 모자랐다. 하지만 신협의 융자가 그에게 살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이듬해 신협으로부터 100만 원을 빌려 단칸방이지만 전세를 얻었고 그 때부터 하루에 천원씩 저축을 시작했다. 3년쯤 지나 빌린 돈을 다
갚은 뒤 다시 300만원을 빌려 방 2개짜리 옥탑방을 얻었고 다음에는 700만원을 빌려 독채 전세를 얻었다. 성남에 온 지 18년째인 99년.
비록 1450만원을 빌리고 전세를 끼긴 했지만 마침내 신씨는 집을 샀고, 이 집을 허문 뒤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새 집을 지었다.

“새끼들 공부 시키고 집 사고 나중에 그 집을 팔아서 아이들을 여우었지요. 신협이 없었으면 꿈도 못 꿨을
일이었지요.”





















▲ 1979년 출발한 성남 주민신협은 설립 초기 출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해산위기를 겪는 등 여러 고비를 넘으며 굳건히 뿌리를 내려왔다. 사진은 86년 자산 5000만원 돌파를 축하하며 플래카드를 내건 모습.


주민교회의 가난한 신도들에게 신협은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운영이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빌려줄 돈이 없어
조합원들은 돈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신자들이 돌아가면서 주말이면 예배당 한 켠에서 돈을 모았다. 가난한 이들이 주머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천원짜리가 수십만원이 되려면 몇 달이 걸렸다. 신협의 자본금은 차츰 조금씩 늘어갔지만 굴리는 돈이 수백만원이 고작인 주민신협은 밖에서
보면 영세한 ‘불량’ 금융기관일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83년 신협중앙회는 출자금 1000만원을 만들지 못할 경우 해산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교회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그대로 문을 닫기에는
신협을 바라보고 있는 교회공동체 식구들의 처지가 너무 딱했다. 때마침 상고를 나와 군복무를 마친 청년 하나가 교회에 나오면서 신협 운영을 맡게
됐다. 그가 이현배 전무다.

“제가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신협 해산을 위한 총회를 하고 있더라고요. 교회의 요청으로 수원교구에서 실시한
신협교육을 받았어요. 평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전무의 ‘등장’으로 신협을 계속 운영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이해학 목사를 비롯해 10명의 이사가 은행에서
100만원씩 빌려 1000만원을 출자했다. 이 전무는 월급도 제대로 받지 않고 3년 동안 교회 한 구석에 책상 하나를 놓고 신협 일을 했다. 그
때부터 신협은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해 92년에는 자산 10억원을 넘었다. 95년에는 자산 100억원을 달성했고 수진동에 지소도 만들었다.
아이엠에프 때도 흔들림이 없었던 주민신협이 가장 어려웠을 때는 2003년 11월 금융감독원이 전국 신협 110여 개를 동시에 퇴출시킬 때였다.
주민신협에도 예금 인출사태가 일어났다. 이 전무는 “온몸으로 막았지만 2주 동안 200억원 가운데 30억원이 빠져나갔다”며 “한 달 뒤 대부분
다시 돌아왔지만 흑자도산을 걱정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위기를 넘긴 주민신협은 이후 신흥동에도 지소를 열어 본점과 지소 2개를 갖춘 비교적 안정된 금융기관으로 커 나가고
있다. 2003년에는 박봉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직원들의 월급도 크게 올렸다.

이승일 이사장은 “자산 500억원 돌파를 계기로 올해를 제2의 창립의 해로 선언했다”며 “금융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 아니라 더불어 사는 지역 공동체의 구심으로 주민신협을 성장시켜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성남/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이젠 지역공동체 만들어
보렵니다





















▲ 성남주민신협을 둘러싼 마을 전경. 주민신협은 이제 단순한 금융기관을 넘어
지역공동체 건설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생산·금융·유통·복지 어우러진
스페인 ‘몬드라곤’ 모델 꿈꿔

금융기관으로 자리잡은 주민신협은 지역공동체 건설이라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주민교회는 처음 신협을 만들
때부터 스페인의 몬드라곤처럼 생산, 금융, 유통, 복지 등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협동조합을 미래의 청사진으로 그렸다. 1990년 생활협동조합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먹을거리와 생활재, 교육재 등을 파는 3군데의 생협 매장은 연간 매출액이 26억원에 이른다.

주민신협은 성남 지역에 소규모 형태의 자활생산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계획도 세우고 있다.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으로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사회연대은행에 1천만원을 운영자금으로 전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초등학생과 홀몸 어르신들이 만나
서로 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지역 공동체 건설을 위해 주민신협은 92년 교회 밖으로 나온 뒤부터 주민들과 소통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올해로 5년째를 맞는 단오축제는 800여명의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표적인 마을행사가 됐다. 주민들을 위해 신협 2층에 공간을 만들어
요가, 스포츠댄스, 요리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대상으로 어린이 경제교실, 우유팩 모아 저축하기, 경제골든벨 퀴즈대회
등의 행사도 열고 있다.권복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