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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교회와 공동으로 성서읽기 자료(번역)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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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다른 눈으로 성서 읽기
마태복음 5장 21-26절에 대한 독일 바인가르텐 교우들의 생각들





성서 본문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 얼른 그와 화해하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게 넘겨주고, 재판관은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어서, 그가 너를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7.1 이 본문은 어디에서 우리에게 말합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힘을 느낍니까? 또는 이 본문은 어디에서 아픈 면을 지적합니까?

구약성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말했다. 예수는 이런 규범을 넘어간다. 예수는 사람들의 존엄함을 박탈하는 그
모든 것을 책망한다. 이를테면 “너 바보”라는 말은 인간의 행위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 존재에게 적용된다.
예수는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죄가 있고, 그러므로 우리가 타자 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더 많은 평화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이 성서본문은
예배드리러 가기 전에 갈등을 풀기 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타자가 화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내 자신
안에서 타자와 평화를 이루는 일만이 가능할 뿐이다.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은 말처럼 버거운 짊이 될 수 있다. “이 본문은 나에게 아무런 에너지도 주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비록 분노가
정상적이고 공통된 감정이라 할지라도, 이 갈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7.2 우리는 그 당시 성서의 맥락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묘사된 상황(싸움과 갈등)은
오늘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따라서 여기서 특별히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7.3 이 본문은 우리가 처한 상황에 어떤 평화의 비전을
주는가?

매우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정의다. 불평등이 갈등을 일으키고 심지어 전쟁을 낳는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한다. 못된 아기를 데려간다는 귀신의 이미지들을 만드는 것(선악
이분법에 기초하여 선한 자가 악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이념적 구실을 만드는 것-옮긴이주)이 종종 전쟁을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이 된다.

한편으로 만일 내가 나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면, 나는 그/그녀의
존엄함에 대한 나의 대항을 버려선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비록 타자가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평화를 향한 내 자신의 의지는 아직 참된 평화를 만들지 못하지만, 평화를
만들 기회는 계속된다. 심지어 예수가 적대자들에게 자신의 평화론을 납득시키지 못해서 죽어야 했지만,  그는 그들을 용서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적 태도다.

7.4 이 본문은 평화가
없는 우리 자신의 경험과 관련하여 우리가 속한 그룹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화해를 위한 시도는 나로 하여금 여러 까닭을 생각하게 한다. 이 화해를 위한 시도는 비록 그
시도가 곧바로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나에게 더 많은 평화를 가져다 준다. 많은 갈등은 주로 이 갈등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고통을 받게 한다.

7.5  이 본문은 어떤 점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고 행동하는 동기부여를
주는가?

인간 존재들은 법보다 더
중요하다
.

14.1  분노로 인해
벌어진 갈등과 그 갈등이 가족과 공동체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눠 봅시다. 당신의 문화에서 이런 갈등은 어떤 방식으로
다뤄집니까?
 

시기심과 질투, 권력을 향한
야망-이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인데-이 갈등의 주요 원인이다. 소유는 큰 의미를 갖는다. 종종 “충분히 소유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종종 객관성을 지키는 일이 어렵다. 우리는 반대자를 나쁜
사람이라 말하고, 그/그녀의 존엄함을 침해한다. 제삼자가 반대자들로 하여금 이 논의를 상기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전에는 위계질서를
수용함으로써 더 쉽게 일치를 보았다. 이 성서본문은 빨리 갈등을 풀도록 충고한다. 그렇지만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오래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면, 분노와 증오를 사지않고 거리를 둘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

우리는 오늘날 이전과 마찬가지로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예로 이혼의 증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자아실현”을 추구한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존경은 비교적
대수롭지 않은 몫을 한다.

14.2
예수의 말씀과 당신의 문화적 전통과 연관시키십시오.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예수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전통적 반응을 넘어서고
도전합니까?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무기들”이 변화하듯이, 우리는 모욕, 비방, 약자 괴롭히기(이른바 왕따시키기)와 같은 행위들을 점점 더 합법적으로 처벌한다. 그러나 명예훼손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14.3
복음서의 빛에서 분노를 극복하고 화해를 이루는 당신의 경험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은 “교우들이” 늘 타자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거나, 상처입히지 않으면서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이런 행위의 까닭을 복음서와의 특수한 관계에서 찾는다.

또다른 특징은 의사결정이 다수에 의해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지만, 만장일치의 투표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교회 그룹이 쉬는 날에 별거하기로 했던 부부가 같이 교회에 머물렀던
것을 보았다. 우리는 그 부부를 위한 기도가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동독의
종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한 평화로운 시위들이 독일의 비폭력적 통일을 가져왔다.

우리는 거룩한 친교에서 우리와 하나님의 화해를 경험한다. 이것이 우리 동료와 평화를 이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