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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청년' 민중교회, 생활공동체로 뿌리내려라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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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선교연대 20주년 기념행사(2005.10.31. 경동교회)
기사

'청년' 민중교회, 생활공동체로
뿌리내려라

생명선교연대 20주년 기념행사 / 노동자의 응급진료소에서
대안적 삶을 사는 공동체로


















   
▲ 생명선교연대 20주년을 맞아 민중교회의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의 비전을 확인하는 행사를 10월 31일
개최했다

억울하게
해고되고, 죽고, 감옥에 가는 등 억눌리고 소외받는 이들을 '민중'이라고 불렀다. 이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이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힘을
보탠 교회를 '민중교회'라고 했다. 작고 힘이 약한, 그럴 수밖에 없었던 민중교회들이 모여 '민중교회연합'(현재 생명선교연대)을 만들었고,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종교개혁기념일인 10월 31일 서울 경동교회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민중교회 지도자들이 민중교회연합이 성년이
되는 생일잔치를 벌였다. '민중과 함께, 생명선교 20년'이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지난 20년에 대한 회고, 내일의 비전, 손님들의 따끔한
충고와 격려가 넘쳤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민은 신앙공동체
세우기










 
▲ 정상시 목사와 박재순 교수는 민중교회가
교회공동체로써 더욱 건실하게 뿌리내려야 할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1부
국제심포지엄은 민중교회의 발자취와 현실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정상시 공동대표와 박재순 교수(성공회대 외래)가 각각 △민중교회운동, 생명선교
20년 회고와 전망 △생명선교연대의 신학적 비전을 주제로 발제했다.
정 대표는 민중교회가 70~80년대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태동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정 공동대표는 이른바 '종로5가권' 명망가들이 중심이 되어 하는
운동이나, 도시산업선교와 같은 기구 운동과 차별된 점을 강조했다. 낮은 자가 있는 현장에 달려가면서도, 개인이나 기구가 아닌 '교회'의 모습으로
다가갔다는 것이다.
서울의 판자촌 사람들을 계획도 없이 무더기로 이주시켜 발생한 70년대 광주대단지
사건과 함께 민중교회의 맏형 주민교회(목사 이해학)가 태동한 이래, 1988년에 이르면 민중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교회가 80여 개에
이른다. 정 목사는 당시 민중교회를 한국사회라는 시대의 전장(戰場)에서 싸우는 전투병 노동자들의 '전방 응급진료소' 같았다고 말했다. 민중교회는
노동상담소·야학·노동자문화교실·맞벌이부부를 위한 탁아소·청소년공부방·진료소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수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정작 주일 예배에는 썰렁한 분위기에서 극히 소수만 모이는 현실을 고민했다." 90년대로 넘어오면서 교회가 담당하던
다양한 활동들이 분화되자, 교회로 모여들던 사람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운동을 위해 모였지만, 교회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점은 민중교회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반성이었다. 정 대표는 1997년 '생명선교연대'로 이름을 바꾸고, 좀더 신앙 공동체로서 뿌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순 교수는 민중교회에 새로운 신학이론이 아니라 새로운 영성과 생활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과거에는 외부의 군사독재라는 적과 싸웠지만, 이제는 외부의 적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동맹세력, 동지들, 심지어 자신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싸움을 "자신을 새롭게 하고 바로 세우는 것,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드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 이누까이 목사와 류쯔 선교사는
민중교회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제기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민중교회와 활발히 교류하는 류쯔 드레셔 선교사(서남독일개신교선교회
아시아 담당)와 아누까이 미쯔히로 목사(일본기독교단 후뀨요시 전도소)도 격려와 충고를 보탰다. 류쯔 선교사는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기를 시도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가는 것을 선호했다"며 민중교회도 고민하는 주제를 던졌다. 이어 그는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인식 때문에 너무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경향은 없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아누까이 목사는 △'전태일은 예수다'라는
고백에서 민중신학이 출발했는데, 현재 어느 장소에서 그러한 고백이 실천되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 △민중이라는 맥이 밑으로 흐르다가 어느 시점 어느
장소에서 폭발하는데, 지금 폭발하는 장소가 어디냐 △폭발이 끝나면 민중교회는 그 장막을 걷어 다른 폭발하는 장소로 이전하면 좋겠다. 민중교회가
한 장소에서 계속하여 성장하는 이미지는 나에게 희박하다. 한국의 민중교회는 어떤가 등 질문을 제기했다. 이들의 질문은 현장에서 바로 답할
문제라기보다 민중교회를 향한 채찍으로 받아들였다.
"민중교회 가족이
자랑스럽다"











   
▲ 심포지엄에 이어 20주년 기념
풍물예배가 이어졌다. 청암공부방 어린이들이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2부에서는 예굿이 진행한 풍물예배가 이어졌다. 주민교회 성가대,
청암공부방 어린이들, 그룹 '나도나도' 등의 공연이 이어졌다. 특히 국내 유일의 이주노동자 밴드 '스톡 크랙다운'이 공연할 때는 1백 명의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 환호했다.
김해성 목사(중국동포의집)의 어머니 안월순 권사(산자교회)는 가족들을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등 현장으로
보낸 어머니, 아내로 겪은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편지를 낭독했다. 김심지 씨도 아버지 김현수 목사(들꽃피는마을)가 다른 교회들처럼 예쁜 이름이
아니라 '노동교회'라는 이름을 쓰는 게 부끄러웠고, 가출청소년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룰 때는 '비행청소년 두목 딸'이라는 놀림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들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사는 가족들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출처] 뉴스앤조이 : 2005년 11월 02일
http://www.newsnjoy.co.kr/news/read.php?idxno=13691&rsec=MAIN§ion=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