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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7일(목)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그리고 율법의 정신에 따라 살라!’ 이주형 (pfrrhee)
2025년 08월 07일 06시 41분 46초 546

2025년 8월 7일(목)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그리고 율법의 정신에 따라 살라!’

 

1. 학개 1:9 (구약 1310쪽).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2. 누가복음 11:42 (신약 113쪽).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모순되는 태도다. 풍요의 원천인 하나님의 집은 제쳐두고 자기들의 집을 먼저 짓겠다는 자세는 복을 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문을 닫으며 들어가려는 듯 이기적인 인간의 자기 배타적인 모습이다. 근원을 메꾸고 거기서 물을 길어 올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애쓸수록 갈증과 빈궁을 자처할 뿐이다. 무딘 도끼로 나무를 베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다. 톱을 갈아 잘 들게 하기 위해 톱 써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하나님의 집은 그 대장간이다. 재산으로 지혜를 살 수 없지만 지혜는 부유함의 길로 안내할 수 있다. 깨끗한 샘물을 마시려면 깊이 파서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샘터가 있어야 한다. 풍요로운 들판 없이 넉넉한 소출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집이 바로 그곳이다(cf. 시 84편).

본질적인 것을 내버리면 껍데기만 남는다. 내용은 뺀 형식일 뿐이다. 율법의 근본 정신인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리면 율법의 준수라는 것은 무의미한 동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상품은 없는 포장지인 것이다. 마태에 의하면 율법의 정신은 공의와 긍휼과 믿음이다(마 23:23. cf. 호 2:19). 개역성서가 한자어로 압축하듯 의(義)와 인(仁)과 신(信)이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그들에게 경건생활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 [법]정신을 빼면 율법의 준수라는 것은 이율배반이 된다. 형식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채우라는 것이다. 몸의 행동이 마음[정성]과 동시여야 한다는 뜻이다(cf. 약 2:14-26; 요일 3:18). 하나님께 대하여 취하는 태도로서 신앙은 겉모습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뵐 수 있는 장소인 주님의 집이 있어 거기서 우리의 아버지이신 주님을 찬양할 수 있고 기도하며 우리의 소원을 아뢸 수 있으며 다름 아닌 거기에서 기쁨을 발산하고 슬픔을 삭히게 됩니다. 땅에 존재하는 특별한 공간인 이 거룩한 성전에서 순전함과 전심으로 주님을 찾게 하시고 그곳에서 배우고 깨달은 주님의 뜻과 거기서 얻은 능력을 힘입어 계명을 실천하며 주님의 의를 이루어 가며 실제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207장 (귀하신 주님 계신 곳); 208장 (내 주의 나라와); 195장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463장 (신자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