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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6일(토) ‘선하게 사는 이는 부끄러워할 필요도 후회할 이유도 없다!’ 1. 창세기 4:7 (구약 5쪽).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2. 마태복음 27:3-4 (신약 49쪽).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형제살해의 이야기이다. 3장이 하나님과 아담[인간]과의 뒤틀어진 수직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면 4장은 사람[형제]들 사이의 왜곡된 수평적 관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타락은 하나님에 대한 근원적인 배반을 말하고 있고 –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는 것이다. '신처럼 될 수 있다'(3:5)는 그 가능성의 미끼를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 형제인 사람들 사이엔 결국 살해의 비극을 가져온 시기와 증오로 이루어진 관계를 전해준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서로 미워하는 사이다. 선을 행하지 못한 인간은 하늘을 향해 낯을 들고 살지 못한다. 죄는 문 앞에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나가서 하는 일이란 결국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것일 뿐이다. 가룟 유다는 태어난 것이 불행인 사람이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악도 악한 날에 쓰임이 되고(잠 16:4)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지만 그 악의 매체가 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유다는 결국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한다. 그가 배반의 대가로 받은 은 삼십을 되돌려주려 했지만 그 행위는 회복될 수 없는 때늦은 것이었다. 그러나 죄의 값은 결국 그 죄인이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다(롬 6:23). 죄인은 자신이 지은 죄와 [함께 그 벌과]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참한 운명의 주인공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선하고 의롭게 만드시고 그렇게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과 선의가 지배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의로운 도구로 쓰임이 되는 행운을 누리게 하시고 우리 자신이 주님의 손이 되어 살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부단히 정제하고 다듬게 하시옵소서. 우리 중에 죄악을 증폭시키는 매개체로 기능하거나 부지불식간에 악한 일에 쓰임이 되는 불행한 이들이 하나도 없게 하시옵소서. 다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산 예배가 되도록 우리를 각성시켜 주시고 영적으로 깨어 있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69장 (온 천하 만물 우러러); 437장 (하늘 보좌 떠나서); 296장 (죄인 구원하시려고); 271장 (나와 같은 죄인 위해); 264장 (정결하게 하는 샘이); 327장 (주님 주실 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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