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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3일(토) ‘하나님은 죄악을 용서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1. 이사야 43:24-25 (구약 1019쪽).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 요한복음 5:17 (신약 150쪽).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하나님께 지기에 힘든 짐이 되었고 괴로움이 되었다?! 이미 예언서의 서두에 언급된 바다(사 1:2-20).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 피곤함이 되어버렸다. 기쁘게 흠향하는 것이 더 이상 아니다(cf. 롬 12:1-2). 죄를 지은 이가 가지고 온 기도란 더러운 음식을 갖다 놓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하나님과의 비뚤어진 관계는 제사를 혐오스런 것이 되게 했다. 하나님은 그러나 죄를 사유하시는 분이시다(시 130:4). 어떻게 제거하시는 것인가? 용서는 씻어 주시고(시 51:2.7) 멀리 옮겨 놓으시고(시 103:12) 발로 밟으시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신다(미 7:[18-]19)는 등의 표현이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다. 완전히 없애 온전함을 회복시키시고 다시는 기억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cf. 렘 31:34). 하나님은 죄를 죄인으로부터 떼어내 분리시킬 수 있으신 분이시다. 예수께서 가지신 삶에 대한 이해와 태도를 말한다. 그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보내신 분이시며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 자신의 일상임을 말씀하신다(요 5:30; 6:38). 그의 자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말한다(요 4:34). 그는 자신을 보내신 이가 자기와 항상 함께 하는 것을 인식하고 사는 이였다(요 8:16.29). 아버지의 일에 참여하는 아들의 삶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보는 이는 예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고 그를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된다(요 12:44-45). 요한복음서의 목적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를 믿는 것이고(요 11:42; 17:8.21) 그렇게 그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이다(요 3:[14-]16-17; 20:31). 곧 그를 아는 것이 영생인 것이다(요 17:3). 참 지식 즉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게 하는 그 앎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가 또한 그의 제자들을 보내신다(요 20:21[-23]).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죄인인 우리는 주님께 기쁨과 찬송이 되기보다 오히려 괴로움과 근심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잘 알고 있으며 허물과 과오를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은 진심으로 참회하고 숨김없이 고백하는 이를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알기 때문입니다. 비옵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사는 이로서 더 이상 죄악에 빠지고 더러움에 뒹굴며 거짓되게 살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용서 받은 죄인’으로서 깊은 깨달음과 뚜렷한 자의식 속에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무효화하는 더 큰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하늘 아버지께서 하시듯 구원과 해방의 일을 하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시혜를 입고 살아가는 이로서 주님처럼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271장 (나와 같은 죄인 위해); 264장 (정결하게 하는 샘이);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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