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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3일(화) ‘가난한 이들을 돌볼 수 있게 하소서!’ 이주형 (pfrrhee)
2026년 02월 03일 06시 38분 07초 549

2026년 2월 3일(화) ‘가난한 이들을 돌볼 수 있게 하소서!’

 

1. 잠언 17:5 (구약 929쪽).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2. 야고보서 2:5 (신약 372쪽).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가난한 자와 그의 창조주를 연결시킨다. 누군가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를 멸시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것이다. 비슷한 구절이 있다(14:31a). 그 반대의 말씀도 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19:17. cf. 28:27). 가난은 비난이나 멸시의 내용이 아니다. 가난한 자는 하늘 아버지의 또 다른 자녀로서 살피고 도와야 할 책임 안의 대상이다(cf. 22:2). 그것은 하나님 공경행위다(14:31b). 그런 사람이 의인이다(29:7. cf. 욥 31:13-23). 자신도 그런 처지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cf. 21:13).

가난이 이상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믿음에 부유한 이들이 될 수 있다. 땅에 소망을 두는 대신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고 마음을 욕심으로부터 정결하게 지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은 물론 차별과 소외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의 우월의식과 우쭐감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가난이 물질에 대한 강한 소유욕의 근본이 될 수 있고 지나친 욕망추구의 동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한 자로 하여금 믿음에 있어서 부요할 기회가 되게 하신다. 그리스도가 그랬다(고후 8:9). 하나님이 그의 보상이 되어주신다(cf. 눅 16:19-31).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가진 먹을거리와 풍요로움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것이며 또 재물을 얻을 능력도 그리고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재주도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않게 하시어 우리가 잠시 소유한 그것이 우리를 교만하고 우쭐대게 하는 것이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그것은 오히려 일시적으로 우리에게 관리가 위탁된 것이며 주신 분이신 주님의 뜻에 따라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사용되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변의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게 하시고 그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우리의 과제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며 살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517장 (가난한 자 돌봐주며); 467장 (높으신 주께서 낮아지심은); 427장 (맘 가난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