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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2일(목) ‘우리는 허물을 용서받아 사는 이들이다!’ 1. 이사야 53:5 (구약 1033쪽).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2. 로마서 4:25 (신약 245쪽).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고난 받는 주[야훼]의 종의 노래는 고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한 문을 열어준다. 소위 대속(代贖)의 개념이다. 부모의 죄가 자손에게 넘겨지는 벌로 이해되었던 전통적 사고를 넘어선다(출 20:5; 34:7).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책임을 스스로 진다는 것(렘 31:29-30; 겔 18:2-4)을 뛰어넘어 한 사람의 허물을 또 다른 이가 진다는 것은 깊은 깨달음의 차원이다. 이 사고의 근원은 제사로 보여진다. 짐승에게 죄가 전가되어 그 죄를 짊어지고 제물로 드려짐으로써 제사자의 죄가 사해진다는 것이다. 그 짐승의 희생의 대가로 용서를 받고 목숨이 부지되는 것이다. 값은 다른 이가 치렀고 나는 평안을 얻었고 치유를 받았다(cf. 눅 10:33-35). 부당한 처사도 있고 불의로 인한 고통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사랑의 원리다. 용서와 사죄 없이 살 수 없다. 부모는 자식을 위한 부담을 기꺼이 짊어지고 그들의 과오의 책임을 진다. 주[야훼]의 고난의 종에 대한 이해는 예수께 적용된다. 예수가 바로 그런 분이시다. 예언자가 선포한 내용은 예수에게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범죄를 위한 값을 치르신 분이며 곧 죄를 전가 받아 죽음의 쓴 잔을 마신 이다. 그의 그 태도는 의롭고 선한 희생이었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셔서 그의 삶과 죽음을 긍정하셨다(행 2:24). 그래서 그는 모든 이들의 주가 되었다(빌 2:6-11. cf. 롬 14:7-9). 자기 목숨값으로 모든 이를 산 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의롭다는 판결을 받고 방면된 것이다. 우리는 풀려나 자유를 얻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답은 자명하다(고전 6:20. cf. 갈 5:1). ‘용서받은 죄인’(루터)이라는 말로 압축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를 위한 삶이다(고후 5:14-15).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대가가 무엇인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할 힘이 없으며 우리가 저지른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짊어질 능력이 없습니다.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큰 잘못을 그러나 주님은 해결할 길을 찾고 방법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또 다른 이들이 우리의 약점을 덮어주고 보충해 줌으로써 살아갈 수 있게 되었사오니 이제부터는 제 맘대로 살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또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준 이들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256장 (나의 죄 모두 지신 주님); 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395장 (자비하신 예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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