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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5일(주일) ‘주님께서 배설하시는 생명의 잔치에 참여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주형 (pfrrhee)
2026년 04월 05일 06시 40분 30초 79

2026년 4월 5일(주일) ‘주님께서 배설하시는 생명의 잔치에 참여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1. 시편 23:5 (구약 818쪽).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 고린도전서 15:26 (신약 283쪽).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일견 아주 목가적으로 보이는 이 유명한 개인신뢰시의 배경은 그렇지 않다. 원수가 목숨을 노리고 추격하는 상황이다. 도망자는 사막에 있는 일단의 대상들이나 유목민 무리의 천막 앞에 지쳐 쓰러진다. 그의 운명은 이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 그들이 이 사람을 영접하여 자신들의 손님으로 여겨주거나 아니면 못 본 체 방치하거나 하는 것에 의해 생사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그는 천막 안으로 받아들여져 원수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흥이 넘치는 생명의 연회다. 보란 듯이 벌여지는 회복의 잔치다. 그는 그들의 보호를 받는 손님이 되었고 원수는 그들을 상대하거나 아니면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추격자들은 쓸쓸히 돌아선다. 도망자는 구원을 받았고 그의 목숨은 보전되었다. 죽음 앞에서 오히려 생명의 잔치를 즐기고 있다. 호의에 의한 시위다.

인간에게 아니 모든 피조물에게 마지막 넘을 수 없는 장벽은 죽음이다(cf. 롬 8:21-22). 태어나서 죽게 되는 운명에 사로잡힌 생물들에게 소망이 있을 것인가? 영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우리는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이들이리라(19절. cf. 전 3:11). 죽음의 벽을 통과해 갈 수 있고 죽음에 더 이상 위협을 받지 않는 참 삶[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그렇다. 참 삶은 죽어야 즉 죽음이라는 열매를 맺는 죄에 붙잡혀 사는 육체의 죽음이 가져오는 것이다.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36절. cf. 요 12:24). 그 희망의 문을 연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다(20절). 생명길인 태를 연 맏아들이다(출 13:2.12.15 etc. 롬 8:29). 죽음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잠이다(22절). 새로운 존재의 모습이다(고후 5:17).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목자이십니다.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보호자가 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모든 노력과 땀으로 일구어진 삶을 허무하게 만드는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소망의 문이 되신 주님으로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극단의 절망에 빠질 우리에게 희망의 서광이 비치는 죽음 너머 생명의 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도 돌파할 수 없었던 죽음의 장벽을 무너뜨리시고 생명의 길을 여시어 주님 뒤를 따르고 주님 안에 머무는 이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믿음과 소망 속에서 더 이상 의혹에 빠지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생명의 옷인 주님을 입고 주의 사람이 되어 지금부터 죽음 너머의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죽어야 사는 그리고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의 신비를 지금 체험하는 가운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437장 (하늘 보좌 떠나서); 462장 (생명 진리 은혜 되신); 548장 (날 구속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