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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목)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의지하고 주님만 우리의 소망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1. 여호수아 1:9 (구약 320쪽).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2. 고린도후서 1:9-10 (신약 286쪽).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여호수아는 전무후무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신 34:10)의 후계자로 지명된 이다. 그는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요 역사적인 인물인 모세의 시종[보좌관]이었던 이다(1:1; 출 33:11). 모세가 죽은 후 그가 이스라엘의 새로운 목자가 된 것이다(민 27:17). 그는 대체 불가한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어 제대로 남은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요단 동편 모압 땅에 도착한 이들을 요단강을 건네 가나안을 차지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이 군사 지도자는 가나안 정복의 임무를 완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다. 어디서든 함께 하시겠다는 동행의 약속이다. 보호와 인도라고 할 수 있다.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 말라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명령이다. 명령 앞에 겁은 허락되지 않는다. '위로의 편지'라 할 수 있는 고린도후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희망을 만들어내시는 분에 대한 찬송시로 시작된다(3절). 극단의 환란과 극도로 심한 정도의 고난은 살 소망까지 버릴 정도의 극한적 절망이었다. 그것이 비로소 참 신앙의 시작임을 말한다. 사람이 가진 마지막 가능성까지 무의미한 것이 되는 맨 밑바닥에 내려가서야 비로소 하나님만이 희망이 되심을 알게 된다. 사람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는 것이 불가능하고 일말의 희망도 없을 때 진정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처럼... 죽어야 살고 죽어도 산다는 바울의 신앙[신학]이 담겨 있다. 진정한 좌절을 맛본 이는 하나님 안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을 넘어서는 희망의 줄을 잡은 이요 소망의 닻을 달고 항해하게 되는 것이다. 절망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절망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십니다. 넘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큰 산과 같고 질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짐과 같은 과제 앞에,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질 때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겠다는 그 약속을 부여잡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고 주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조금의 소망이 없을 때에도 우리가 절망하지 않음은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진정한 희망의 근원이 되어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좌절한 이를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시며 새 힘을 부어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거기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주님을 만나고 우리의 절망 너머에서 참 소망의 빛을 비춰주시는 주님을 뵙게 됩니다.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믿음을 선물해 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464장 (믿음의 새 빛을); 344장 (믿음으로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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