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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그의 얼굴을 그대 위에 [밝게] 비추시고...” - 아론의 축복(민 6:24-26)에 대한 단상(4) 이주형 (pfrrhee)
2026년 08월 09일 15시 46분 59초 20

3. 나가며:[성전에서의] 축복과(/의) 인사

3-1. 축복이란?

축복은 성전순례시의 이별인사로부터 전승된 것이다(vgl. 삼상 1:17; 2:20). 시편 134편은 복이 시온에서부터, 하늘과 땅의 창조자로부터 성전을 떠나는, 그리고 세상으로 들어가는 이에게 따라야 할 것임을 설명한다. 복은 시온에서부터 나온다(시 128:5). 헐몬의 이슬이 거기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이 ‘거기’(sham)에서 [제사장] 아론의 수염에 흘러내리는 기름은 매우 상징적이다(시 133:2-3). 성전으로 순례하는 이유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머물 장소로 선택하신 곳으로 하늘 복이 전달되는 장소로서 이해된다(cf. 시 132:15-26)]. 거기 하나님이 계셔서 흔들리지 않는 곳인 하나님의 성(시 46:4-5)에서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cf. 시 42:2). 이 복 주시는 하늘과 땅의 창조자(시 134:3)를 가장 잘 연상시키는 것이 태양이다. 하나님의 (볼 수 없는) 얼굴을 상상케 하는 하늘 붙박이 피조물이다. 이 짧은 축복기원문에 하나님의 ‘얼굴’이 두 번이나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러므로 그것이 생명에게 에너지를 주는 태양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브니엘’을 참조하라! ‘내가 하나님을 뵙고도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창 32:30)]. 두 번이나 축복의 내용으로 언급되는 이 하나님의 얼굴은 우리가 언제나 그리워하고 바라는 얼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얼굴을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 쳐다보지 않은 경험이 있는 이들은 더욱 이 축복문의 구절이 가까이 와 닿는 것을 느낄 것이다. 형제들끼리 얼굴을 서로 마주보고 [동거하며] 사는 것,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좋은 관계’의 표시인 까닭이다(시 133:1). [그것 곧 형제와의 아름다운 동거는 복의 표징이 된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고 외면하시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기 때문이다. 짙은 구름 낀 하늘처럼 그분이 찡그리시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참기 힘든 고통일까?(cf. 시 30:7))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여 그분의 밝은 얼굴을 보여주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이 아닌가? 원해야 할 (빌어야 할) 축복의 내용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 이것이 제사장인 목사가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바라는 (그들을 위해 비는), 그들에게 향한 축복인 이유다. [서로에게 - 만인사제직 이해에 따라 - 제사장이 되는 교우들이 상대 교우들에게 만날 때마다 축복의 인사를 나누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축복하며 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안에 다른 축복의 내용이 녹아있고 평화가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복의 수혜자가 될 ‘그대[들]’를 밝은 얼굴로 대해주시길, 우리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을 향하여 환히 웃어주시길 (예배의) 마지막에 비는, 삶의 자리로 떠나는 이들을 위한 ‘제사장’의 간절한 ‘기원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성전을 떠나 있는 동안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위해 다시 성전을 찾아오기 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인 바] 축복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지고 있다.

3-2. 이동을 위한 필수품

동사[복]로 시작된 축복문은 명사[평화]로 끝난다. 아론의 축복문의 위치는 시내산에서의 체류를 마감하고 두 번째 유월절을 지나고 다시 출발하기 전 [예전적인] 준비의 마무리와 같이 이해되도록 구성되었다(민 10:11). 말하자면 오경의 구조 속 아직 시내산에서 머물며 다시 광야길을 출발하기 전 마지막 점검의 단계에 속한다. 그것은 이어지는 가나안을 향한 광야 여정이 하나님의 강복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게 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졌음을 말해준다. 새 출발의 무장이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은 복의 외연이자 내용이다. 축복은 평화를 향한 과정의 동행에 필요한 것으로서 주[야훼]께서 주시는 평화의 복에 대한 염원이다. 그 축복은 무엇보다도 보호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평화 즉 하나님의 복으로 가능해지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이동로에 대한 바람으로 압축된다. 축복은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 필요한 내용이며 마지막에 가나안에 도착하여 얻을 안식을 내다본다. 도달해야 할 지향점은 곧 그들이 가는 과정에서 이미 선취되어야 하는 것이다. 강복과 함께 이루어지는 ‘은혜 아래’ 이동 과정이다(cf. 롬 6:14). 복은 광야 이동의 필수품이다. 광야 여정에 하나님께서 제공해주시는 그늘일 수도 있고(cf. 시 121편) 반석을 깨뜨려 물이 나게 하는 능력일 수도 있다(민 20:8). 그러나 축복은 이들이 들고 가는 물 항아리처럼 그것은 조심스레 보관하고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제사장은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라는 목적지로 가는 과정으로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음울한] 골짜기’(시 23:4) 또는 하나님의 집을 향해 순례하는 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눈물 골짜기’(시 84:6)로 비유될 광야[같은 인생]길의 동행자로서 하나님의 강복을 비는 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제사장의 강복의 바람 아래서 그리고 그가 비는 축복의 울타리 안에서 이동하게 된다. - 끝 -

 

 

참고문헌

Veijola, T., Art. Segen/Segen und Fluch, TRE Bd.31, Walter de Gruyter‧Berlin‧New York 2000, 76-79.

Westermann, C., Der Segen in der Bibel und im Handeln der Kirche, München 1968. (장일선 역, 성서와 축복, 서울 :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2)

Seybold, K., Der aaronitische Segen: Studien zu Numeri 6,22-27, Neukirchen-Vluyn 1977.

Achenbach R., Art. Aaronitischer Segen, WiBiLex 2006